'허수 청약 방지' IPO 제도 개선안에 IB업계 '탁상공론' 날 선 비판

입력 2022-12-20 16:19
수정 2022-12-21 10:38
이 기사는 12월 20일 16:1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의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안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기관 투자가의 허수 청약을 막기 위해 수요예측 기간을 늘리고 증권사 제재를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국내 실정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IPO 담당자들은 ‘탁상공론’에서 나온 규정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코너스톤 제도 도입 없으면 '무용지물'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규정 개정 등을 통해 IPO 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8일 공개한 ‘허수성 청약’ 방지를 위한 IPO 제도 개선안이 뼈대가 될 예정이다.

제도 개선안에는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 수요 조사 허용, 허수성 청약 관련 기관 및 주관사 페널티 강화, 상장 당일 가격 변동 폭 확대 등이 담겼다.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사전 수요 조사를 허용하고 수요예측 기간을 최대 7일까지 늘려 공모가의 적정성을 강화하겠단 의도다. 금융당국은 사전 수요조사 도입을 시작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사전 투자수요 과정에서 보호 예수 물량까지 접수하는 코너스톤 제도까지 도입하겠단 계획이다. 코너스톤 제도가 도입되면 수요예측 이전에 특정 적격 투자자에게 일부 공모주 물량을 배정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사전 수요 조사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도 대다수 증권사가 희망 공모가를 설정하기 전에 비공식적으로 기관투자가의 눈높이를 확인하고 있어서다. 사전 수요조사와 달리 가격 숫자와 공모 물량이 오가지 않지만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격대를 책정하기 위해 이뤄져 왔다.



코너스톤 제도가 도입되기 위해선 국회에서 사전 공모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내에서 코너스톤 제도는 지난 2018년부터 도입 논의가 시작됐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사전 수요조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선 코너스톤 제도 도입까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다만 코너스톤 제도가 도입되면 대형 투자자 위주로 공모주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는 그동안 다수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참여를 독려해온 정부 정책과 상충한다는 점에서 국회에서 통과되도 당분간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와 다른 국내 IPO 제반사정 감안해야"수요예측 기간을 현행 2일에서 최대 7일로 연장하는 방안 역시 유의미한 실익을 거두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많다. IPO 호황기에는 물량을 받기 위해 첫날 주문이 몰리고, 반대로 불황기에는 낮은 가격에 참여하기 위해 마지막 날 주문이 집중된다. 수요예측 기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런 행태에는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IB 들의 시각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미국 등 해외에서는 먼저 주문을 넣는 적격 기관투자가에 상당량의 물량을 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수요예측 기간이 길수록 유의미한 지표가 될 수 있다”며 “국내의 경우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코스닥벤처펀드와 하이일드펀드 등을 대상으로 한 의무 배정 비율을 지켜야 하기에 수요예측 기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수 청약’ 방지를 위해 증권사에 과중한 부담을 지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허수 청약을 하는 기관의 주금납입능력을 주관사가 확인하고,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증권사에 업무정지 등을 제재를 내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제도에서도 각 주관사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각 기관투자가가 실질 수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각 기관의 주금 납입 능력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주관사가 공공기관이 아니기에 각 기관이 제출하는 서류만으로 각 기관의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고의나 실수로 서류에 잘못된 사항이 기재 돼도 증권사가 일일이 확인할 방법이 마뜩잖다는 설명이다.

미국 IPO 시장에서는 주관사가 오래동안 관계를 맺은 기관투자가만을 수요예측에 참여시킬 수 있다. 국내는 이와 달리 일정 허들만 넘기면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주관사에 재량권을 주지 않은 채 선별 업무만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그동안 국내 IPO 관련 규제는 형평성과 공정성이 하나의 큰 축으로 작동하면서 해외 IPO 시장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왔다”며 “해외와 제반 사정이 다른 국내 IPO 시장을 감안하지 않은 누더기 식 정책은 시장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