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골목. 지도에 폭 3m로 표시돼 있지만 한눈에 봐도 성인 한 명이 지나기 어려울 만큼 병목현상이 심했다. 무단 확장한 고깃집 테라스가 오른쪽을, 짐을 쌓아둔 캐노피 천막이 왼쪽 벽을 점령하면서 골목길 절반가량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골목 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액세서리, 옷을 전시해 놓은 매대와 에어컨 실외기 등이 뒤엉켜 행인의 발걸음을 여기저기서 가로막았다. 골목 안팎 건물 21개 중 15개(71.4%)가 경쟁이라도 하듯 불법으로 증개축한 결과다.
익선동만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달 초부터 이달 19일까지 서울 주요 상권 8곳(강남역 신사역 건대입구역 성수역 종로3가역 홍대입구역 망원역 문래역)의 폭 5m 이하 355개 골목, 3180개 건물을 전수조사한 결과 불법 건축물을 하나 이상 끼고 있는 골목은 215곳(60.5%)이었다. 주요 상권 골목 10개 중 6개가 불법 건축물로 오염돼 있다는 뜻이다. 불법 건축물의 95%는 무단 증축 건물. 단속을 피한 건물이 10%가량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감안하면 열에 일곱이 비정상 건물이다.
법을 어겨도 건물주에게 큰 타격은 없다. 연간 수백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지만 처벌을 감수하고 벌 수 있는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0년 이상 버티는 건물이 수두룩한 이유다.
한국 도심에는 가뜩이나 차도와 인도 구분이 없는 좁은 골목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테라스와 가벽 등 불법 증축에 무허가 건물까지 들어서자 통행권을 침해하는 병목현상은 물론 크고 작은 안전사고도 잦아졌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역시 좁아진 보행로가 인명 피해를 키운 도화선이 됐다. 전문가들은 “상권에 따라 원점에서 도시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경은 반복되는 골목길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서울 주요 상권의 불법 건축 실태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구민기/장강호/원종환/김우섭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