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사진)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청 노사, 특히 원청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더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불법 파업에도 민사책임을 면제해달라는 것은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다.
중노위는 노사 간 권리분쟁을 조정하는 준사법기관으로,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제28대 중노위원장(임기 3년)에 임명됐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노사분쟁 해결 전문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노동경제학회장, 중노위 공익위원(1997~2006년)을 지냈다. 2001년에는 국내 최초로 분쟁해결연구센터를 설립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양극화를 지목하면서 현행 기업별 노조의 산별 노조화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하청기업 노조 및 근로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서 벌어진 것”이라며 “원청기업은 하청 노조의 요구를 받아줄 권리도 의무도 없으며 그럴 위치에도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우조선해양의 교섭 구조가 산별이었다면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모두 교섭에 참여했을 것이고, 극단적인 투쟁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별 교섭에서는 힘이 있는 원청 노조가 임금을 많이 받다 보니 하청업체 몫이 줄어든다”며 “산별교섭이 되면 교섭대표 논란이 사라지고 노조도 건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노조 파업에 따른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현행법도 노조의 합법 파업에는 민사책임을 묻지 못한다”며 “불법 파업에 대해서도 면책을 주장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데다 사용자성 확대 주장도 원청기업이 기본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고, 지키고 관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과 관련해서는 “서두르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개혁은 긴 호흡으로 로드맵을 마련하고 하나씩 협상이 가능한 것부터 추진해야 한다”며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노동개혁도 모두 10년 이상 노력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두 차례 파업(집단 운송거부)으로 10조4000억원(한국경제연구원 추산)의 피해를 남긴 화물연대 사태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법과 원칙을 내세워 적절하게 대응했지만 택배와 화물연대 등의 분야는 분쟁 해결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다”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나 화물연대가 중노위에 의뢰했다면 특별위원회를 꾸려서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고 노동 갈등도 복잡해졌는데 노동법·제도는 이에 못 따라가고 중노위의 역할도 소극적인 부분이 적지 않았다”며 “자율적 분쟁 해결이 아니라 파업 등 소모적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극적 중재, 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승현/곽용희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