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극한대립으로 ‘예산안 최장 지각 처리’라는 불명예 기록이 날마다 경신되고 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었던 2019년(12월 10일)보다 이미 1주일 넘게 뒤처진 상황이다. 의견 차이가 워낙 커 연내 합의 불발로 초유의 ‘준예산’ 사태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가 증폭된다.
내년 예산안은 벌써 세 차례나 처리 기한을 넘겼다. 법정처리 시한(2일), 정기국회 회기(9일)에 이어 국회의장이 제시한 협상시한(15일)도 못 지켰다. 이런 대치는 블랙홀처럼 다른 이슈를 집어삼켜 입법 마비 사태로 이어질 조짐이다. ‘연말 일몰’이 코앞으로 다가온 화물차 안전운임제, 8시간 연장근로제(30인 미만 사업장 대상), 건강보험 국고 지원 등의 연장 논의까지 올스톱이다.
기본적으로 여야 모두의 책임이지만, 특히 대선 민의 불복에 가까운 더불어민주당의 생떼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야당은 예산안 심사 초기부터 ‘윤석열표 예산’ 5조~7조원을 깎아 ‘이재명표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새 정부의 핵심 정책 예산을 대대적으로 칼질하고 지난 정부 때 자신들이 밀어붙인 정책을 고집하다 보니 협상이 될 리가 없다. 국민의 새로운 선택을 부정하고 실패로 판명난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오만하고 무책임한 정치다.
우여곡절 끝에 여야 힘겨루기의 핵심 쟁점은 법인세 인하율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및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으로 좁혀지는 모습이다. 야당이 ‘법인세 3% 인하’를 부자 감세라고 우기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스스로 ‘민주 정부’로 지칭해온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법인세를 내렸다. 감세 혜택은 1000만 명이 넘는 국내 주요 기업 소액주주, 근로자, 중소기업에 두루 돌아간다. 코로나 장기화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예고하는 경기 불황에서 국내외 투자를 촉발해 전 국민이 수혜를 볼 수 있는 검증된 정책이기도 하다.
대선 실패는 지난 5년간 시도한 정책의 총체적 탄핵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야당은 새 정부의 개혁정책인 경찰국·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새해를 앞두고 ‘R(경기 침체)의 공포’가 시시각각 커지는 위기 국면에서 과도한 예산 발목잡기는 ‘함께 죽자’는 자해의 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