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내년부터 스마트폰 전략을 크게 바꾼다. 원가 절감 등 수익성 위주의 개발·마케팅 전략을 지양하고 고성능 스마트폰용 반도체 최적화 등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의 격차를 줄이고 소비자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갤럭시 고객 경험 극대화에 집중”15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열린 DX(디바이스경험)부문 경영진 회의에서 “원가 절감에 얽매이지 말고 스마트폰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전 부서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 부회장의 발언에 대해 “원가 절감은 중국 업체 같은 후발주자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고객 경험(고객이 브랜드에 가지는 긍정적인 인식)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 부회장의 이 같은 주문은 애플은 달아나고 중국 업체는 쫓아오는 ‘샌드위치’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전략은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에 방점이 찍혔다. 갤럭시A 시리즈로 대표되는 중저가폰을 앞세워 신흥국 시장 공략에 주력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하드웨어 측면에서 빠르게 따라오면서 삼성전자만의 마케팅 포인트가 많이 약화된 상황이다.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과 쉽지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3분기 세계 프리미엄폰(400달러 이상)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57%, 삼성전자는 19%였다. 접히는 디스플레이가 특징인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Z 시리즈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출하량 기준)은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결과 올해 4분기엔 프리미엄 시장을 넘어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애플에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란 전망(애플 24.6%, 삼성전자 20.2%)이 나왔다. ◆갤럭시 최적화 AP 개발팀 신설원가 절감 대신 제품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한 부회장의 주문은 이달 초 단행된 삼성전자의 조직 개편 및 정기 인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X(모바일경험)사업부는 지난 9일 조직 개편을 통해 AP솔루션개발팀을 신설했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제품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AP솔루션개발팀은 AP 관련 선행 기술 개발, 성능 분석, 상용화 등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은 갤럭시에 들어가는 AP의 최적화 솔루션 개발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AP솔루션팀장을 이번 정기 인사에서 MX사업부 개발실장에 내정된 최원준 부사장이 맡은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최 부사장은 퀄컴 등에서 일하다가 2017년 삼성전자에 합류한 반도체 전문가다.
산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자체 개발해 A시리즈 AP를 통해 아이폰 성능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AP솔루션팀 출범은 MX사업부가 갤럭시에 최적화된 AP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5~16일 이틀 일정으로 열리는 DX부문 글로벌 전략회의의 주요 안건 중 하나도 스마트폰 사업 경쟁력 회복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MX사업부 임직원들은 △폴더블폰 대중화를 위한 성능 개선 △롤러블 디스플레이 등 새로운 폼팩터(기기 외형) 상용화 △스마트폰 라인업 효율화 등을 두고 머리를 맞댄 것으로 전해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