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운전자본 관리·활용의 중요성[권영대의 모빌리티 히치하이킹]

입력 2022-12-14 16:04
수정 2022-12-16 10:29
이 기사는 12월 14일 16:0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실행했던 저금리 시대가 올해 들어 종식됐다. 지난 3월의 기준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네 차례 연속해서 기준금리를 75bp씩 올리는 소위 ‘자이언트 스텝’을 밟아왔다. 이로써 연초에 제로 수준이었던 미국의 기준 금리는 지난 11월 기준으로 3.75%~4.00% 수준에 이르렀다.

연준이 이렇게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게 된 가장 큰 배경에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미국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 물가(CPI) 상승률은 지난 6월에 9.1%로 최고점을 찍으면서 금융당국에 경종을 울렸다. 그 이후에 물가 상승률은 완만하게 하강곡선을 그렸고 최근에는 물가 상승률이 작년 말 이후 최소폭을 기록하면서 연준의 긴축 속도 조절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1월 CPI 상승률이 7%대에 머무르면서 금융당국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올해의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회의에서 연준은 기존의 ‘자이언트 스텝’에서 한 발 물러나되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하는 소위 ‘빅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2년에 일어난 이런 금융환경의 변화는 지난 10년 동안 저금리 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해온 기업들에게는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2019년에는 미국에서 금리 상승의 기조가 보였으나 팬데믹 발생 이후에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여 금융시장은 다시금 저금리 기조와 유동성 장세로 돌아섰다. 결과적으로 팬데믹이라는 예측 불가한 요소로 인해 저금리 시대가 당초보다 길어졌던 것이다.

또한, 금융 조달 비용은 낮은 와중에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선매입이 이득인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서 기업은 대체로 재고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물론, 오히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불확실성 속에서 핵심 재고를 확보해두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 환경은 이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게 되었고, 경기하락으로 인해 인플레이션도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들도 다시금 운전자본(working capital), 즉 유동자산의 총액에서 유동부채의 총액을 공제한 자본의 관리 및 활용에 주의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제조업은 세분화된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재료비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이는 자동차 산업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그 중에서도 자동차 부품업의 경우에는 재료비가 7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런 산업의 특성상, 해당 기업들은 재고 관리를 위시하여 운전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했는지에 따라서 향후 시장에서의 성패, 그리고 생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적절한 수요예측, 생산계획, 조달계획으로 이어지는 생산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다만 단기간에 기업의 생산관리 효율성을 향상시키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럴 경우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재고 회피형’ 사업 모델이다.


기업은 내재적 재고관리 역량과 재고노출 수준에 따라, 재고 수용에 대한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다. 즉, 재고 감수형(tolerant), 중립형(neutral), 약회피형(moderately averse), 그리고 회피형(averse), 총 4가지 유형의 프레임워크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재고관리 역량이란 사내 유보자금 수준, 수익률 수준, 생산관리 효율성 수준에 의해 결정되며, 이 역량이 높을수록 재고로 인한 리스크를 겪을 가능성이 적다. 반면 재고 노출 수준은 기업이 처해있는 사업의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 재료비의 비중이 크거나 재고관리가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물류기간이 오래 걸리는 해외 수출의 비중이 클수록 해당 기업이 재고 위험에 노출되는 성향이 높아진다.

이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재고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재고관리 역량이 낮은 업종의 기업일수록 재고 수용성을 낮추고 회피형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 (그림 2에서 1번 유형) 재고 수용성을 낮춘다는 것은 재고에 대한 부담을 고객, 협력사, 금융 시장에 전이시킨다는 의미이며 이를 위해서는 일정 부분 거래 조건에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예컨대, 판매 시 재고관리 부담 측면에서 우호적인 조건을 받기 위해 공급가를 낮추거나 공급가 결정 방식(Formula)을 조정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구입 시에도 마찬가지로 구입가를 조정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고객·협력사의 재무 여력 그리고 사업 관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사업 차원에서의 조율 뿐 아니라 업종에 따라서는 파생상품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특히 원유, 철광석 등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사업의 경우에는 레버리지, 인버스 등 다양한 파생상품이 존재한다. 가격 변동성이 크고 방향성 예측도 어려워서 리스크도 분명 있지만, 재고 회피형 모델의 기업으로서는 재고를 낮추고 위험을 분산(hedging)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외 주요 자동차 업체들도 변동하는 원자재 가격에 대응하고 재고 관리를 하기 위해서 관련 협의체를 운영해서 연 단위 물량 확정 계약을 하거나 파생상품을 활용하는 추세에 있다. 한편, 재고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낮으며, 사내유보자금 등이 충분하여 운전자본 관리 체력이 충분한 회사라면 발상의 전환을 해서 현재 금융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즉 재고에 대한 부담을 지는 대신, 공급가를 올리거나 매입가를 낮추는 등 영업적 이익을 도모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 영역에 해당하는 기업의 결정권자들은 운전자본 관리를 강화하는 대신에 미래의 영업 가치 상승을 지향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추구할 수 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고금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저금리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고금리 시대 또한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고금리 시대가 일시적인 현상이며 다시금 종전의 저금리 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급격한 금융환경 변화가 기업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과감한 결정을 통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조율하고 금융환경에 적응하여 향후의 고금리 시대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생존력과 경쟁력을 갖추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