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게 화가 날 때도 책상 위 서류를 다른 편으로 툭 던질 뿐,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은 물러섬 없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과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에서도 추 부총리의 이런 스타일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는 법 개정안을 놓고서다.
여야는 지난 11월부터 예산안과 각종 세법을 두고 논의했지만 법인세 인하는 큰 쟁점이 되지 못했다. 양당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와 종합부동산세 개편을 놓고 주로 맞섰다. 정부와 여당은 초기부터 법인세를 4대 쟁점 세법 중 하나로 올렸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집에 명시됐던 금투세 폐지, 종부세 인하와 달리 법인세 인하는 협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점도 한 이유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법인세 인하는 세수 감소폭이 커 당시 윤 대통령이 무게를 실은 재정 건전성 확보와 상충되다 보니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5~6일 양당 정책위원회 의장 간 예산 협상 때부터 반전되기 시작했다. 7~8일 원내대표 간 회동을 기점으로는 올해 예산 협상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추 부총리는 7일부터 양당 협상에 참석해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양당 협상에 기재부 차관이 배석해 필요한 설명을 했을 뿐, 부총리가 직접 나선 사례는 드물었다”며 “법인세 인하에 대한 추 부총리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양당 간 실무협의에서 논의가 봉쇄되면서 추 부총리가 양당 원내대표의 협상 테이블에 법인세 개정안을 들고 나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기재부 재직 시절부터 법인세 인하와 부과 체계 단순화에 강한 소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21대 국회에서도 의원 입법 1호는 모두 법인세 개정안이었다. 9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추 부총리는 “현재의 법인세제로는 글로벌 기업 유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개인 주주가 600만 명에 이르는 삼성전자에 대한 감세가 야당이 말하는 초부자 감세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가 법인세 인하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감세를 통해 더 많은 자유를 기업에 부여하고, 투자 활성화를 이끌어내는 게 윤석열 정부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런 뚝심은 여당과 정부를 차례로 돌려세웠다.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법인세법은 민간 중심의 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원 사격에 나선 배경이다.
승부수를 띄운 추 부총리가 야당까지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직을 걸고 막겠다”며 반발했다. 법인세 인하 협상 때문에 내년 예산안 협상 전체가 좌초될 수도 있는 위기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는 “금투세와 종부세 협상이 타협점을 찾은 가운데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는 추 부총리 특유의 협상전략일 것”이라며 “올해 3월까지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으며 비슷한 방식으로 많은 것을 얻어갔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