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은 산전수전을 겪고 넘은 업력 30년 이상 업체만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다. 100개 창업 기업 중 단 2개만 이 영예를 안는다. 국가 경제적 기여도 남다르다. 장수기업은 업력 10년 미만 기업에 비해 자산은 평균 28배, 매출은 19배, 고용인원은 11배, 법인세 납부액은 32배에 이른다. 이들 기업 상당수가 위기에 직면했다. 소위 ‘승계 절벽’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로 태어난 창업자들이 고령으로 퇴직 시기에 접어들면서다. 장수기업 가운데 60대 이상 대표 비중은 80.9%에 달한다. 한국 산업에 도사린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코앞에 닥친 '승계 절벽'가업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징벌적 상속세’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50%)은 최대주주 주식할증 평가까지 감안하면 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조사 결과 대표자가 고령인 장수기업 중 절반 이상(52.6%)이 원활한 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제도가 가업상속공제다.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인이 가업을 상속할 때 일정 재산을 과세가액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하지만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한국의 연평균 가업상속공제 이용 건수는 93건으로 독일(연평균 9995건)과는 천양지차다. 고용 유지와 업종 변경, 최대주주 지분율, 자산 유지 등 지키기 어려운 사전·사후 조건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다. 업력이 100년 넘는 초장수 기업이 일본 3만3076개, 미국 1만9497개인 데 비해 한국은 7개에 불과한 배경엔 이런 문제가 깔려 있다.
중소기업 대표의 고령화가 폐업 사태로 이어져 축적된 기술과 일자리가 사장되는 사태를 막는 일이 시급해졌다. 70대 이상 중소기업 대표가 이미 2만 명이 넘는 상황이다. 표류하는 가업상속공제정부가 지난 7월 가업상속공제를 현실화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내놓은 이유다. 상속 공제 한도를 1000억원으로 두 배 인상하고, 상속에 따른 업종 변경 제한도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부자 세습’ ‘부의 대물림’이라는 거대 야당의 흑백논리에 막혀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업의 지속경영을 위한 가업 승계는 개인이 자산을 물려받는 상속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상속공제 대상이 영업활동과 관련한 기업용 자산으로 한정되고, 지원 세제가 납부 면제가 아니라 ‘징수 유예’인 것만 봐도 그렇다. 과세특례 적용 후 후계자가 경영을 포기하거나, 고용유지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되물어야 한다.
중소기업은 국가 산업의 허리이자 대부분 국민의 삶의 터전이다. 전체 기업의 99%를 구성하고, 고용의 81%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무더기 폐업은 산업 경쟁력의 근간을 허무는 것은 물론 거기서 일하는 직원과 가족의 생계도 끊는다. 기업이 문을 닫거나 회사가 팔리면 더 고통받는 쪽은 경영자일까, 직원과 그 가족일까. 답을 모른다면 근시안적 무지고, 알고도 모르는 체한다면 사이비 진보다. 교조적 진영논리를 버리고 승계 절벽 해결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야당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민생과 직결된 문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