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안보 보장 요구를 들어주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주장을 놓고 유럽연합(EU)에서 비판 여론이 가열되고 있다. 동유럽과 발트해의 EU 회원국들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안위를 우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의 유럽이사회(EC) 의장국인 체코는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에 항의하는 문서를 프랑스 외교부에 전달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형성돼 온 EU의 단결을 위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도 동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일 미국 방문 중 프랑스 방송 TF1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NATO가 러시아 문 앞까지 온 걸 두려워하고 있다”며 “(평화협상 시) 러시아가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올 경우 어떻게 NATO 회원국과 러시아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전쟁 피해국보다 침략국의 안보를 걱정하는 취지로 읽힌다는 이유에서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누가 테러리스트 살인자 국가(러시아)에 안전을 보장해주길 원하는가”며 “전범 재판 대신 러시아와 악수하자는 뜻이냐”고 비난했다. 알렉산더 스툽 전 핀란드 총리는 “러시아가 다른 국가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부터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전세가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2012년 3기 집권 이후 매년 해오던 연말 기자회견을 생략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정 전반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한편, 서방에 경고도 날려왔다.
EU는 이날 러시아에 공격용 드론을 제공한 이란의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추가 제재를 내놓았다. 하지만 9차 대(對)러시아 제재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제재안의 세부 내용과 방식을 두고 이견이 있었으나, 조만간 만장일치 동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기반 시설 파괴 공격으로 전력난에 처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은 이날 1300만달러어치의 전력 장비를 처음 발송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서 돈을 벌 기회를 엿보는 투자기업들이 급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중에는 우크라이나에 인프라 건설 자재와 장비를 공급할 유럽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는 곳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은행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재건에만 3490억달러(약 456조원)가 필요하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