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로 예정된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자신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하고, 연말 대선까지 패배한다면 정치판에서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국회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을 얻어야 국회의장이 법안과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선진화법(정식 명칭은 국회법 개정안)이 새누리당 주도로 만들어진 배경이다. 당시 민주통합당도 전기톱과 해머, 소화기까지 등장한 폭력 국회를 막겠다는 취지의 법안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여야가 법안 제정에 합의한 뒤 치러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152석)을 달성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당 비주류는 반대했지만,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임을 강조해온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찬성하면서 법안은 2012년 5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동물 국회’ 오명을 벗자고 만든 선진화법은 여러 폐단을 낳았다. 소수당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식물 국회’라는 조롱을 받았다. 18대 국회 26.9%이던 법안 처리율은 19대 국회에선 15.0%로 뚝 떨어졌다.
물리적 폭력은 줄었지만, 언어폭력이 기승을 부렸다. 법안 하나 처리하는 게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지자 흥정도 횡행했다. 소수 야당에서조차 “차라리 동물 국회가 낫다”는 말까지 나왔으나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21대 국회 들어선 꼼수들이 등장했다. 선진화법상 여야 이견이 큰 쟁점은 3명씩 동수로 안건조정위를 구성한 뒤 최장 90일간 숙의토록 했지만, 3분의 2(4명) 이상 찬성하면 곧바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게 맹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탈당한 의원을 상임위 안건조정위에 ‘무늬만 무소속’으로 집어넣어 4 대 2 구도로 만든 뒤 언론중재법, 검수완박법, 방송법, 양곡관리법 등을 처리하는 꼼수를 부렸다. 선진화법엔 여야가 11월 30일까지 예산결산특위에서 예산안을 합의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附議)해 12월 2일까지 처리토록 했으나 지금까지 두 번만 법이 지켜졌다. 이 정도면 선진화법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