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영웅", 쌍천만 감독이 만든 안중근은 뻔하지 않았다

입력 2022-12-11 18:23
수정 2022-12-12 00:18

모두가 다 아는 뻔한 스토리를 영화로 만드는 건 두 배 어려운 일이다. 관객을 놀래켜줄 ‘깜짝 반전’이나 ‘예상과 다른 결론’을 넣기 어려워서다.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감독’ 타이틀을 가진 윤제균 감독은 8년 만의 복귀작으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안중근 의사를 택했다. 대신 ‘뮤지컬 영화’란 흔치 않은 장르로 선보였다. 뻔한 소재를 새로운 형식으로 감싼 것이다. 윤 감독의 전략이 먹혔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형식의 신선함’이 ‘소재의 익숙함’을 눌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웅’(사진)의 원작은 2009년 처음 무대에 오른 뮤지컬 ‘영웅’이다. 이 작품을 뮤지컬 영화로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예 뮤지컬에서 안 의사 역을 맡아온 정성화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영화는 안 의사가 드넓은 설원 위를 힘겹게 걷다가 자작나무 숲에 이르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안 의사는 이곳에서 동지들과 네 번째 손가락을 잘라내는 ‘단지동맹’을 맺는다. 핏빛으로 물든 눈길 위에서 이들은 ‘그날을 기약하며’를 부른다. 목소리에는 비장함과 굳은 의지가 배어 있다.

뮤지컬 영화답게 곳곳에 뮤지컬 특성을 넣었다. 안 의사의 사형 장면에서 어둡던 배경이 갑자기 밝게 전환되는 장면, 첩보원 설희(김고은 분)가 있던 밝은 무도회장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설희가 홀로 노래 부르는 장면 등에서 그랬다. 공연 무대에서 조명을 활용해 분위기와 장면을 전환하는 기법을 들여온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10여 분이다.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나문희 분)가 안 의사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과 홀로 부르는 노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이 대목이 끝나면, 윤 감독이 왜 “이 영화는 어머니의 영화”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큰 주제는 암울하고 비장하지만, 지나치게 무겁게 흐르지 않도록 신경 쓴 게 눈에 띈다. 안 의사와 동지들이 만두를 나눠 먹는 장면, 진주(박진주 분)와 동하(이현우 분)의 풋풋한 로맨스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구성도 단선적이지 않다. 안 의사의 이야기와 첩보원 설희의 이야기가 함께 흘러가는 이중 구조로 설계했다. 그 덕분에 서사가 한층 더 풍성해졌다.

뮤지컬 영화답게 최고 매력 포인트는 노래다. 윤 감독은 생생함을 위해 대다수 노래를 라이브로 녹음했다. 정성화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말할 것도 없고, 설희 캐릭터가 가진 설움을 잘 녹인 김고은의 노래 솜씨도 일품이다. 절절한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한 나문희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분명 ‘진입장벽’은 있다. 특히 영화 초반, 대화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선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자꾸 듣다 보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