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모듈형원자로(SMR)는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원자로다. 출력 300㎿ 이하의 원자로로 전력생산, 수소생산, 선박의 추진동력, 우주개발, 지역난방, 군사용 등의 여러 가지 목적으로 전 세계에서 70여 종의 SMR이 개발되고 있다.
한국도 2년여 전부터 150㎿급 전력생산용 혁신형 SMR(i-SMR)을 개발하고자 연구를 기획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했고 그 결과 3000억원을 웃도는 금액으로 확정시킨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전액 삭감했다. SMR 연구는 기획부터 여야 국회의원이 참여했고 더불어민주당의 대선공약에도 포함된 것이다.
리처드 해리스는 힌두교도들이 소를 잡아먹지 않는 것은 소를 숭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건기에 배가 고파 소를 잡아먹고 나면 우기에는 밭을 갈 수 없어 결국 소를 살려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옛날 농부들은 씨앗을 자기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다. 흉년에도 굶어 죽을지언정 씨앗은 먹지 않았다. 씨앗을 남겨둬야 다음 해에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앗에 해당하는 것이 연구개발이다. 당장은 돈만 들어가고 성과가 없지만, 단 한 가지만 혁신을 이룬다면 마치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워 백배 천배 결실을 맺듯이 더 많은 미래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기 어려운 시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에 기여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데 쓰일 현실적인 대안이다. SK는 미국 테라파워사의 SMR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삼성물산, GS에너지도 미국 뉴스케일사의 SMR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는 신규 SMR 사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SMR 개발을 위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어찌하여 저들은 정치가 침범하지 말아야 할 과학의 영역까지 들어와서 정치행위를 하는 것일까?
탈원전 정책이 선언된 2017년에 이미 전문가들은 값싼 원전 비중의 감소로 인한 한국전력의 적자, 원전수출 저해, 재생에너지의 무분별한 확대로 인한 국토의 훼손, 전력망 교란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지적을 정치적 반대로 받아들인 결과, 탈원전 정책을 강행했다. 정권은 유한해도 국가는 남는다. 정권이 국가의 미래먹거리를 해칠 권리는 없다. 과학을 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