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야 좀 비켜줄래?"…스포츠카보다 빠른 짐승 트럭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입력 2022-12-10 07:00
수정 2022-12-10 12:38

“테슬라 세미를 공개하고 5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질 않네요”

지난 1일(현지시간) 테슬라 배터리 공장인 기가 네바다 행사장. 수많은 관중이 숨죽인 채 무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침내 어둠을 뚫고 나타난 육중한 트럭이 급정거합니다. 테슬라의 첫 전기 트레일러트럭인 ‘세미’입니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차량에서 내리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이날 테슬라는 세미 트럭을 식음료 업체 펩시코에 납품했습니다. 2017년 11월 첫 모델 공개 후 5년 만입니다. 2019년 생산하겠다고 공언한 뒤 수년간의 ‘일론 타임’이 있었지만 결국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로써 테슬라는 승용차 및 SUV인 모델S·3·X·Y에 이어 다섯 번째 모델을 양산하게 됐습니다. 테슬라가 공개한 신차 중 사이버트럭은 내년 중반 생산 예정이고 세미 트럭과 함께 선보였던 2인승 스포츠카 로드스터는 미정입니다.


제로백 5초 ‘짐승 트럭’테슬라의 발표에 따르면 세미 트럭은 3개의 모터를 장착해 1000V의 힘으로 기존 디젤 트럭 대비 3배의 성능을 냅니다. 최대 허용 중량인 37t 트레일러를 견인하면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 20초입니다. 트레일러를 떼고 달리면 단 5초입니다. 공차중량 1.4t에 불과한 포르쉐 718 박스터(4.9초)와 차이가 없습니다. 벤츠나 BMW의 고급 세단과 스포츠카도 제로백 5초대 모델이 수두룩합니다. 머스크는 세미를 설명하며 “(성능이)짐승과 같다”고 자랑했습니다.

한번 충전하면 최장 500마일(800㎞)까지 주행이 가능합니다. 300마일(500㎞) 중·단거리용 모델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울~부산 정도의 거리는 넉넉하게 주파합니다.


세미 트럭은 모델S·X 기반의 파워트레인을 적용했습니다. 드라이브 유닛, 공조, 히트펌프, 인버터 역시 기존 모델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검증된 자사 기술로 비용을 줄이고 성능은 극대화하려는 의지입니다(테슬라의 이 같은 전략은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에도 적용됐습니다). 생산은 기가 네바다에서 담당합니다. 배터리 용량 및 사양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머스크는 지난 3분기 실적발표에서 세미 트럭에 차세대 4680 배터리를 쓰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배기가스 없는 ‘친환경 트럭’머스크는 세미가 ‘친환경 트럭’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테슬라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의 1%에 불과한 상용 트럭이 전체 차량 배기가스의 20%를 뿜어냅니다. 온종일 운행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전기 트럭인 세미는 그 어떤 배기가스도 배출하지 않습니다.

내연기관인 디젤 트럭 대비 부드러운 주행감이 장점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순항할 경우 한 개의 모터만 사용하고 다른 두 개의 모터는 가속 시에만 구동됩니다. 기어가 없으니 변속 딜레이도 없습니다. 테슬라는 화면 영상을 통해 총 37t 중량의 세미 트럭이 경사로에서 디젤 트럭을 가볍게 제치는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제동 능력도 뛰어납니다. 내연기관 트럭은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 엔진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브레이크를 많이 쓸수록 고장 확률이 높아지고 대형 사고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반면 세미는 전기차 특유의 회생제동으로 훨씬 안전하게 감속이 가능합니다.

테슬라는 ‘메가와트’라는 초고속 충전 시스템 청사진도 공개했습니다. 기존 슈퍼차저를 뛰어넘는 충전 네트워크입니다. 용량은 1MW(메가와트)입니다. 테슬라는 세미 트럭이 이 충전기로 30분 내 최대 70%까지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차세대 쿨링 기술을 적용한 덕분입니다. 이 충전 기술은 내년 생산되는 사이버트럭에도 적용될 예정입니다.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는 “이날 테슬라의 발표 중 가장 주목할 기술”이라고 전했습니다.


가격은 미공개…"2억7000만원 예상"문제는 가격입니다. 테슬라는 이날 행사에서 세미 트럭의 가격을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2017년 첫 공개 당시엔 500㎞ 모델 15만달러(약 1억9500만원), 800㎞ 모델 18만달러(약 2억3400만원)를 제시했습니다. 미국 벤처 캐피탈인 루프 벤처스(Loup Ventures)는 “세미의 가격은 경쟁 차종보다 30% 높은 18만달러와 21만달러(약 2억7300만원)로 예상한다”며 “2024년 2만대를 팔아 테슬라 전체 판매량의 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독일 컨설팅업체 롤랜드버거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디젤 엔진 트레일러의 평균 가격은 약 12만달러(약 1억5600만원)입니다. 루프 벤처스가 예상한 가격은 물론이고 테슬라가 5년 전 제시한 18만달러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가격 차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고 나서야 테슬라가 트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습니다. 상업용 전기차는 최대 4만달러(약 5200만원) 세제 혜택을 받습니다. 전문가들이 IRA의 최대 수혜주가 세미 트럭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테슬라는 “전기 충전이 디젤보다 마일당 2.5배 저렴하다”며 “세미 트럭 운전자는 3년 내 최대 20만달러(약 2억6000만원)의 연료비 절감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장기적으로 전기 트럭이 디젤 트럭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주장입니다.


자율주행 트럭에 쏠리는 관심 머스크는 전기 트럭의 최대 관심사인 자율주행과 관련해서도 말을 아꼈습니다. 기술적 문제인지 트럭 운전사들의 반발을 의식한 행보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세미 주행 테스트 영상에서 오토파일럿 기능을 활용한 장면이 나왔을 뿐입니다. 루프 벤처스는 “오토파일럿은 운전을 쉽게 해주는 세미의 핵심 기능”이라면서도 “자율주행 기능인 FSD 도입엔 5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전망했습니다.

미국 물류 시장은 이커머스 발달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트럭 운전사는 부족합니다. 미국 트럭운송협회(American Trucking Association)에 따르면 2020년 트럭 운전자 수는 2018년 대비 약 6만명 감소했습니다. 2026년까지 약 18만명의 운전자가 부족할 전망입니다. 운전사의 평균연령도 49세로 미국 국민 평균연령 42세 대비 높습니다. 운전자가 부족해지면 인건비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류 트럭회사 입장에서 자율주행이 절실합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에서 다른 완성차 업체보다 앞서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류 트럭은 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주행 경로가 정해져 있어 기술적 측면에서 난도가 훨씬 낮습니다. 첫 공개 후 5년 만에 양산에 들어간 세미 트럭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 2편에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