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은 제과·제빵을 포함해 서구식 요리에 필수적인 재료다. 근대화가 시작된 20세기 초반 일본 기업이 평양에 제당공장을 세우긴 했지만, 설탕은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한 것을 완제품 형태로 수입했다. 일제시대 국내에 방직업부터 각종 중화학공업에 이르는 산업의 기초가 마련된 것과 딴판이었다.
6·25전쟁 이후 국내 설탕 소비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으나, 역시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가격도 1950년대 초반 근(600g)당 300환으로 비쌌다. 같은 무게 소고기 값의 2배 수준이었다. 사업보국을 경영 이념으로 삼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생필품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자’며 제조업 진출 분야로 제당업을 잡았다.
이 회장은 1953년 8월 항구에서 멀지 않은 부산 전포동 도심에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현 CJ제일제당)를 세웠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1월 5일, 6300㎏의 설탕가루가 처음으로 쏟아졌다. 나중에 ‘백설표’란 브랜드가 붙여진 첫 국산 설탕이었다. 한국의 산업 근대화를 알린 첫 제조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3년 0%였던 설탕 자급률은 불과 3년 뒤 93%까지 높아졌다. 제일제당의 설탕 소매가가 근당 100환으로 떨어지면서 일반 가정에서도 설탕 사용이 일반화했다. 명절 선물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등 사회문화적 변화도 일어났다.
CJ제일제당은 이후 밀가루·조미료·사료·식용유·가공식품 등의 생산 비중을 크게 늘렸다. 반면 유지·제당·제분 등 식품소재 비중은 줄었다. 최근에는 핵산·아미노산 등을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바이오 분야도 급성장했다. 작년 CJ제일제당 매출 15조7443억원 가운데 식품소재는 11.5%, 바이오는 39.3%에 달했다. 제당사업 매출 비중은 3.1%로 쪼그라들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종합식품회사가 된 CJ제일제당으로선 회사 이름이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영어 회사명도 ‘CJ CheilJedang’이라고 쓰니 외국인들도 갸우뚱하는 모양이다.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비비고의 위상 등을 감안하면 ‘제당’을 떼는 게 자연스럽다. 1953년 창업 이후 69년간 유지한 사명을 어떻게 바꿀지 관심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