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은 정부의 입김이 강한 업종이다. 공공재인 주파수를 정부로부터 할당받는 것이 비즈니스의 첫걸음이다. 통신사들의 위치가 ‘을(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밉보이면 사업이 축소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 보니 어지간한 정부 요청은 군말 없이 수용한다. 그런 점에서 5세대(5G) 이동통신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둘러싼 통신사들과 정부의 갈등은 이례적이다. 업계가 정부의 지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28㎓ 주파수 할당 내용을 점검했다. 그 결과 KT와 LG유플러스가 할당 취소, SK텔레콤이 이용 기간 단축(6개월) 처분을 받았다. 28㎓ 장비 설치율이 이행 목표보다 훨씬 낮은 10.6~12.5%에 그쳤다는 이유에서다. 통신사가 약속한 투자를 포기하고, 정부가 할당한 주파수를 회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의 그늘지난 5일 통신 3사의 입장을 듣는 비공개 청문 자리에서도 이렇다 할 반전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사들은 이미 투입한 주파수 대금의 92%인 5711억원을 손실 처리한 상태다. 정부는 제4 이동통신사를 새로 뽑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28㎓ 사건의 발단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 ‘세계 최초 5G 상용화’란 타이틀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5G 상용화는 전 정권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유영민 전 과기정통부 장관이 주도했다. 핵심 메시지는 ‘LTE(4G)보다 20배 빠르다’였다. 정부는 ‘진짜 5G’와 ‘세계 최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28㎓와 3.5㎓를 패키지로 묶어 할당했다. 홍보는 속도가 빠른 28㎓로 하고, 통신장비의 설치는 3.5㎓ 중심으로 진행한 것이다.
우리가 쓰는 5G는 3.5㎓ 주파수를 활용한다. 주파수 대역폭이 좁아 데이터 처리 속도가 LTE의 2~3배 수준에 불과하다. 5G가 정부의 홍보 문구처럼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내려면 28㎓ 대역 주파수에서 5G만 사용해야 한다. 정부 주도 '관제 통신' 시대 끝나28㎓대 주파수는 ‘투자 대비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직진성이 강해 신호가 쉽게 가로막히는 탓에 3.5㎓보다 장비를 훨씬 더 촘촘히 설치해야 통신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시장 수요도 많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5G 스마트폰은 28㎓를 아예 지원하지 않는다. 스마트공장이나 메타버스 수요를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제 통신’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사들이 이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과포화 상태다. 매년 조 단위가 들어가는 만만찮은 투자금 때문에 신규 사업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업계가 통신 비즈니스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 전환(DX) 수요 덕에 데이터센터 등 이른바 ‘비통신’ 매출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번 사건은 6G 등 미래 통신망 상용화를 준비 중인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적을 위해 통신사에 적자가 뻔한 투자 계획을 요구하거나 무리한 일정을 강요하는 행태는 갈등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부가 통신사들의 반란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