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얼마길래…일본서 가장 비싼 도쿄도 넘어섰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2-12-08 06:55
수정 2022-12-08 09:30


명목임금과 구매력 평가 기준 임금에 이어 최저임금도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내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일본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도쿄를 처음 앞선다.



2023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9620원으로 올해보다 5% 오른다. 5일 환율(100엔=960원)을 적용하면 1002엔이다. 일본의 내년(2022년 10월~2023년 9월) 평균 최저임금은 961엔으로 한국보다 41엔 낮다. 일본의 KOTRA인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는 지난 9월 보고서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을 6570원에서 9160원으로 41.6% 끌어올린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4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별로 최저임금이 다르다. 최저임금이 전국적으로 같은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일본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비싼 지역은 도쿄다. 도쿄의 내년 최저임금은 1072엔으로 한국보다 70엔 높다.



하지만 일본에 없는 주휴수당이라는 제도를 적용하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JETRO는 설명했다. 주휴수당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에게 하루분의 수당을 추가 지급하는 제도다. 이 제도에 따라 15시간 일하는 한국의 근로자는 15시간분이 아니라 20%를 가산한 18시간분의 임금을 받는다.



주휴수당을 반영한 한국의 실질적인 최저임금은 9620원보다 20% 많은 1만1544원(약 1202엔)이 된다. 도쿄의 최저임금보다 130엔 높다. 한국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낮은 제주의 편의점에서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시급이 도쿄보다 높은 셈이다.



다만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급여 인상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2020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3.8달러로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32위였다. OECD 평균(59.4달러)을 크게 밑돌았다. 노동생산성이 낮기로 악명 높은 일본조차 시간당 노동생산성(49.5달러)은 한국보다 높았다.



한국의 임금 수준이 모든 부문에서 일본을 앞선 건 한국의 급여가 꾸준히 임금이 오르기도 했지만 일본의 임금이 오랫동안 정체된 탓이 더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평균임금은 424만엔(구매력 평가기준)으로 35개 회원국 가운데 22위였다.

1위인 미국의 평균 임금을 엔화로 환산하면 763만엔으로 30년 전보다 1.5배 늘었다. 한국은 1.92배, OECD 평균도 33% 증가했다. 반면 일본의 평균 임금은 30년 동안 4% 늘어나는데 그쳤다.



임금이 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질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 20대 초반 직장인의 급여수준을 100으로 했을때 30대 초반의 급여수준이 1990년은 151.0이었던 반면 2020년은 129.4로 감소했다. 1990년에는 직장인이 되고나서 10년을 일하면 급여가 51% 느는데 2000년에는 29% 밖에 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후생노동성의 임금구조 기본통계 조사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조사에서도 2020년 20대 독신 남성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평균 271만6000엔으로 1990년(318만7000엔)보다 15% 줄었다. 30년간 급여가 4% 오르는 동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 부담액은 29만4000엔에서 49만8000엔으로 늘어난 탓이다.

26~40세 일본 직장인의 평균 가처분 소득은 약 350만엔(약 2만6000달러)으로 미국(5만달러)의 60%에도 못미쳤다. G7 꼴찌였다.



2011년 5만3189달러였던 일본의 명목 임금은 불과 4년 뒤인 2015년 3만4347달러로 35% 줄었다.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린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영향으로 달러 당 엔화 가치가 75엔에서 110엔대로 급락한 영향이다. 일본인의 급여 수준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올들어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임금 또한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일본은 물가가 오르더라도 임금이 따라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증권은 1982~2020년까지 40여년 간의 데이터를 기초로 기업이 어떤 조건에서 근로자의 급여(기본급)를 올리는지 분석했다.



기업은 물가가 오를 때가 아니라 성장이 예상될 때 급여를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5년간 기대성장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급여는 0.6%포인트 올랐다. 반면 물가가 1%포인트 올라도 급여는 0.1%포인트밖에 오르지 않았다. 바바 나오히코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성장에 자신이 없으면 기업은 고정비가 되는 임금(기본급)을 올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