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古)음악계 디바’로 불리는 소프라노 임선혜(46)의 또 다른 별명은 ‘클래식 음악계의 마당발’이다. ‘말발’이 워낙 좋은 데다 남의 얘기도 잘 들어주니 그의 주변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무리 바빠도 동료 음악인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는 임선혜. 그러다 보니 ‘무대에서 내려올 나이가 되면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꿈이 자연스럽게 그의 안에서 자랐다.
임선혜가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달 개국한 한경아르떼TV의 기획 프로그램 ‘옴브라 마이 푸’(사랑스러운 나무 그늘이여)의 단독 진행자로 발탁되면서다. 지난 6일 서울 청파로 한경아르떼TV 녹화현장에서 만난 임선혜는 “10년 뒤에나 가능할 걸로 봤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며 웃었다.
옴브라 마이 푸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최정상급 클래식 음악가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토크쇼다.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에서 주인공이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에 고맙다고 인사하며 부르는 아리아 이름에서 따왔다. 임선혜가 이걸 프로그램 이름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그는 “햇빛이 내리쬐는 따뜻한 오후, 나무 그늘 아래 폭신한 공간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툭 터놓고 얘기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다 보니 옴브라 마이 푸가 떠올랐다”고 했다.
프로그램 이름뿐만이 아니다. 출연진을 섭외할 때도 하나같이 그의 손을 거쳤다.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와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양인모(바이올리니스트),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 칭호를 받은 사무엘 윤(바리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임지영(바이올리니스트),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선우예권(피아니스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피아니스트), 리즈 국제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김선욱(피아니스트)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로 출연진을 꽉 채웠다. 양인모와 사무엘 윤은 방송을 타 호평을 받았고, 나머지는 매주 한 명씩 전파를 탄다.
임선혜는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이 모이는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음악가들과 인연을 맺었다”며 “현지에서 식사도 하고 서로 집에 초대도 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임선혜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건 그 자신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소프라노였던 측면이 크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얘기다. 1999년 벨기에 출신 거장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에게 발탁돼 유럽 무대에 데뷔한 그는 풍부한 감성과 투명한 음색, 당찬 연기력으로 바로크 음악 지휘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고음악계 최정상 소프라노가 됐다. 또 다른 고음악계 거장 르네 야콥스로부터 “최고의 노래와 최고의 연기를 펼치는 소프라노”란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옴브라 마이 푸를 통해 ‘연주자 OOO’뿐 아니라 ‘인간 OOO’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음악가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태도, 철학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음악과 연주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선혜는 “어떤 음악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게 되면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출연자들에게 때론 ‘성악가 임선혜’로 음악적인 질문을 던지고, 때론 ‘친구 임선혜’로 인간적인 측면을 끌어낼 수 있는 답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했다.
임선혜의 초청 대상은 한국 음악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그의 레이더망에 걸려 있다. 1번 타자는 최근 내한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다. 임선혜는 “레즈네바와 과거에 같은 무대에 서는 등 인연은 있었지만, 워낙 바쁜 일정 때문에 인터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오히려 레즈네바가 ‘한국 팬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흔쾌히 출연에 응하더라”고 말했다. 임선혜는 “국내 클래식 팬은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 하고, 해외 예술인들도 한국 팬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며 “옴브라 마이 푸가 이들을 하나로 엮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임선혜에게 “음악인들에게 옴브라 마이 푸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클래식 음악가라면 반드시 출연해야 할 프로그램이죠. 공연이나 음반을 홍보하기 위해 억지로 출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예술철학을 들려주고 싶은 음악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요. 시청자에겐 ‘음악가를 사랑할 결심’을,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낼 결심’을 품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김수현/송태형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