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플랫폼 자율규제와 '밀림의 귀환'

입력 2022-12-07 17:34
수정 2022-12-08 00:09
TV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아프리카 초원의 오아시스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수면 아래 악어가 갑자기 몸을 들어 입 벌리고 달려들거나 배고픈 사자가 얼룩말을 쫓기라도 하면 이내 평화는 깨지고 약한 동물은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도망하기 마련이다.

플랫폼 생태계도 겉으로는 이전에 없던 편리와 풍요를 가져다준 것처럼 보이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약육강식의 법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최상위 포식자로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빅테크가 있고, 그 밑으로 카카오, 네이버 같은 국내 플랫폼이 있으며, 이들 빅테크와 거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사업자가 있다. 좌우로 시야를 더 확대해보면 플랫폼 생태계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이 없을 정도다.

창의성을 내세운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는 마치 혁신을 가로막는 처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어렵사리 마련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기업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새 정부의 정책에 따라 사실상 폐기됐다. 그런데 지난 10월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로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에 잠시 제동이 걸리는 듯했으나, 전체적으로 자율규제 기조는 흔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샌디에이고 로스쿨의 로벨 교수에 따르면 플랫폼의 법 규제에는 쉬운 사례와 어려운 사례가 있는데, 경쟁법과 진입장벽에 관한 문제는 공공복리와 관련된 문제에 비하면 오히려 쉬운 사례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는 대체로 사업자 간 이해충돌의 문제를 쉬운 사례로 보는데, 최근 우리나라의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이나 망 이용료 법안을 둘러싼 논란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려운 사례란 어떤 것일까. 빅테크가 사실상 전 세계를 장악하고, 몇몇 대규모 플랫폼 기업이 국내의 소셜미디어, 유통, 문화 등 일상 대부분을 좌우하는 것은 현실에서 목도하는 바다. 통제 불능의 집중이 가져온 폐해는 부지불식간 우리 곁에 와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가 그 단적인 예다. 이미 도래했거나 곧 들이닥칠 이런 세계에 대한 공동체(지역, 국가, 인류)의 합의가 있기는 한 것일까. 이는 앞서 본 사업자 간 이해충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는 본격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치 기후변화 논의처럼 미뤄두고 있는 것인데, 플랫폼 발전 속도에 비춰보면 지금 논의해도 너무 늦다. 그러나 지금은 자율규제에 내맡겨진 ‘쉬운 문제’의 해결까지도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는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오아시스야말로 초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장소다. 일상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빅테크와 거대 플랫폼 기업이 나날이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율규제란 ‘밀림의 귀환’과 다름없다.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에서 나름의 질서를 유지했던 무파사(형 사자)를 죽인 후 스카(동생 사자)는 하이에나 떼에 둘러싸여 무리 안에 있는 동물들을 먹어 치우고 보존하지 않는다. 암사자는 더 이상 밀림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야말로 포식자의 자율에 맡겨진 결과는 밀림의 황폐였던 것이다. 목전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문제를 외면하고 쉬운 문제에만 매달릴 뿐 아니라 규제를 철폐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암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