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옳지 않아!"
작지만 당찬 소녀는 외쳤다. 부당함에 맞서는 모습이 새삼 비장하다. 그러나 커다란 무대에 울려 퍼진 외침은 어딘가 공허하고 허무맹랑하다.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난다.
곧 변화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약간의 '똘끼'가 필요하다며 불의와 싸우는 소녀의 올곧고 당돌한 마음가짐은 이내 세상을 향한 불호령이 된다. '옳지 않다'는 외침이 가볍게 여길 말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공연장을 나갈 때쯤이면 조그마한 소녀가 어느덧 위대하게 느껴진다. '마틸다'의 마법이다.
뮤지컬 '마틸다'는 세계적인 아동문학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을 기반으로 1997년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도 유명하다.
자기 자식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세상. 소녀 마틸다 웜우드 역시 도서관 사서에게 부모님은 자기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밖에 오래 나가 있는 것도 걱정할 정도라고 말하는 그에게 사서는 "네 부모님은 정말 좋겠다. 너 같은 딸이 있어서"라며 미소 지었다.
정직한 성격의 마틸다가 하는 유일한 거짓말이다. 5세 마틸다의 취미는 책 읽기다. 어린 나이임에도 도서관의 어떤 책이든 읽을 줄 아는 똑똑한 소녀지만, 부모님은 그를 '불량품'이라고 불렀다. 학교에 입학하니 교장까지 아이들을 괴롭혔다.
학대라는 괴물에 맞서 통쾌하게 승리를 거두는 마틸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어린아이들이 주로 등장하는 작품이라 극을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약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약 7개월 동안 3차에 걸쳐 진행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마틸다 역의 아역 배우들은 9~11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때로는 어른스럽게, 때로는 순수하게 입체적으로 마틸다를 표현해낸다.
'불의를 깨부수는 아이들의 유쾌한 반란'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에 큰 울림을 부여하는 건 연출력이다. 160분간 무대를 알차게 채우는 촘촘하고 섬세한 연출이 매 순간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마틸다의 감정과 상황,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창의적인 무대 활용, 다채로운 조명 연출, 군무 등이 보는 재미를 높인다. 구조물에 알파벳 블록을 쌓아가며 단어와 문장을 만드는 장면을 비롯해 레이저를 활용한 감옥 표현, 객석을 넘어오는 그네 타는 신, 물건을 움직이는 마틸다의 초능력 장면 등 섬세하고 알찬 구성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역 배우들이 책걸상을 이용해 완벽한 군무 합을 선보이는 부분에서는 강한 쾌감도 느껴진다.
좋은 메시지, 환상적인 연출, 아역과 성인 배우의 연기 합이 어우러져 동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밑거름이 된다.
특히 '마틸다'는 아역 배우별로 재관람하는 마니아층이 있는 걸로 잘 알려져 있는데, 다른 위치에서 무대 연출을 다양하게 경험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기자 역시 객석 1층과 2층에서 총 2회를 관람했다. 객석을 넓게 활용한 연출이 많아 1층에서는 강한 몰입감을 바탕으로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2층에서는 조명 연출의 매력을 보다 디테일하고 풍성하게 만끽할 수 있다.
커튼콜까지 방심해서는 안 되는 '마틸다'다.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정의라는 오아시스를 발견해 동심이라는 물 한 모금을 마신 기분이다.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동화다.
공연은 내년 2월 26일까지 서울 구로구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