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노후 아파트 단지의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 2018년 도입한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이 4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서울형 리모델링은 리모델링 주택조합이 시설물 등을 공공 기여하면 용적률을 최대 40%까지 높여 주는 사업으로,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등 일곱 곳이 시범 단지로 선정됐다.
그러나 지난 9월 ‘서울형 리모델링 기본계획’ 변경으로 시범 단지에 대한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가 축소되면서 해당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차라리 주민 주도로 사업을 추진하는 게 낫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서울 시내 리모델링 ‘최대어’로 꼽히는 남산타운이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 추진에 대한 주민 반발로 4년 넘게 난항을 겪으면서 운영 동력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 되레 줄어
서울시는 9월 10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서울형 리모델링 추진 단지의 인센티브 항목을 세분화한 ‘2030 서울시 공동주택 기본계획’을 가결했다. 변경된 기본계획은 공공성 확보를 위해 인센티브 항목을 종전 7개에서 15개로 대폭 늘렸다. 가장 큰 변화는 ‘친환경 건축물’ 항목이다. 기존에는 ‘녹색 건축물’ 설계 기준만 충족하면 용적률을 최대 20% 높여줬지만, 바뀐 기본계획은 △녹색 건축물 설계 △에너지효율등급 △‘제로 에너지 건축물’ △전기차 충전소 등 다섯 가지 항목을 충족해야 최대 20%의 인센티브를 주도록 했다. 인센티브 총량은 그대로인데 맞춰야 하는 요건은 훨씬 많아진 것이다.
리모델링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어서 친환경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강화된 요건을 고려하면 친환경 건축물 항목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인센티브는 10%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로와 공원 등 ‘기반 시설 정비’ 인센티브는 종전 20%에서 10%로 오히려 줄었다. ‘지능형 건축물’은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최대 10%) 항목이 삭제됐고 ‘지역 친화 시설’의 공공보행통로·열린 놀이터(10%→8%), 담장 허물기(10%→4%) 등도 용적률 상향 폭이 축소됐다. ‘최대어’ 남산타운, 4년째 표류인센티브 산출 기준도 ‘현재 용적률’이 아니라 ‘용도지역별 용적률 상한’으로 바뀌었다. 가령 기존에는 현재 용적률이 300%인 3종일반주거지역 아파트가 10%의 인센티브를 얻으면 330%(300+300×10%)까지 완화된 용적률을 적용받았다. 그러나 개정된 기본계획 아래에선 3종일반주거지역 용적률 상한(250%)을 기준으로 산출해 325%(300+250×10%)까지만 리모델링할 수 있다.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 단지 주민들은 서울시의 행정적 지원이 턱없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A시범 단지 조합 관계자는 “리모델링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현실은 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이런 마당에 공공 기여 조건만 강화하니 실망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고 했다.
총 3118가구 규모인 남산타운은 시범 단지 7곳 중 유일하게 조합 설립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당초 ‘서울형 리모델링 추진위원회’가 사업을 주도했지만, 이에 반발한 주민들로 구성한 ‘주민 주도 리모델링 추진위’가 출범한 뒤로 장기간 갈등을 빚고 있다. 두 추진위는 최근 사업 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시작했지만, 당초 목표대로 내년 상반기 조합을 설립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B시범 단지 관계자는 “건축 심의 등 사업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행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