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2018년부터 약 1년 반 동안 치과기공소에서 근무하던 A는 사업주를 상대로 퇴직금을 달라고 주장했다. 사업주의 답변은 "이미 퇴직금은 월급에 포함됐다"였다.
월급에 퇴직금을 포함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급여명세서에 따르면 매월 퇴직금 조로 12만원가량 지급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사장은 A의 소송에 대해 되레 "월급에 포함해서 받은 퇴직금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반소를 제기했다. 그 돈으로 퇴직금을 주겠다는 계산이다.
전주지법 제1민사부는 지난 10월 6일 A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A의 청구를 인용했다. 반대로 사업주의 반소는 기각했다.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퇴직금을 분할해서 지급하는 '분할 약정'은 엄연히 무효다. 합당한 중간 정산 사유가 없는 한 퇴직금 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다만 이 경우 지급 약정 자체가 무효이므로, 퇴직금 조로 지급된 금원은 근로자의 '부당이득'이 된다. 따라서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그간 퇴직금 조로 받은 돈을 우선 반환하고, 퇴직금을 따로 받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전주지법 재판부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A가 그간 받은 퇴직금 조의 임금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먼저 근로자의 부당이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월급 등에 퇴직금을 포함하고 퇴직 시 별도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합의가 존재하고, 퇴직금 명목의 임금 액수가 특정되는 등 사용자와 근로자가 임금과 구별해서 추가로 퇴직금 명목으로 일정한 금원을 실질적으로 지급할 것을 약정한 경우에만 해당 법리가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결(2020.8.27.선고 2017다290613)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A의 근로계약은) 연봉이나 월급이 분명하게 특정되지 않았고, 임금과 퇴직금 명목의 돈을 구별해서 지급한 게 아니라 월 1회 합산해서 지급했다"며 "퇴직금 명목의 돈을 실질적으로 지급하는 약정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퇴직금 항목으로 지급된 돈을 제외하면 나머지 임금이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한 돈은 실질적으로는 임금의 일부로 지급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명목만 퇴직금으로 지급했을 뿐 사실상 임금이기 때문에, 기존 대법원판결의 법리대로 퇴직금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 영세업체는 여전히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해서 지급하는 것을 근로조건으로 내거는 곳이 없지 않다. 퇴직금 정산이 간편하다는 이유에서다.
적발돼도 근로자에게 지급할 퇴직금과 상계 처리를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아직도 만연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따르면 자칫 이런 꼼수를 쓰다가는 이중으로 퇴직금을 지급해야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