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와 식사하기.’ 마치 코엔 형제의 최신 영화 제목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문구가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후보의 사회생활을 묘사한 것이라면 우리는 질문할 권리가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극우 시사평론가 닉 푸엔테스와 회동했다. 이 자리엔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힙합 가수 예(카녜이 웨스트)도 동석했다. 이 모임의 확장된 의미를 추론해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트럼프는 이후 결백한 척했다. 수천만 명의 지지자에게 “예가 사업과 관련한 어려움에 대해 전 대통령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혀 낯선 손님을 데려왔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물론 정치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예에게 대선에 출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의 지지자는 나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유대주의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푸엔테스를 모릅니다.” 예와 회동에 비난 여론 거세겉으로 보기엔 전적으로 그럴듯하다. 푸엔테스는 소규모 미국 파시스트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예는 성공한 사업가에서 대통령으로 변신한 트럼프로부터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만남이 대선 경쟁 후보를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란 점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일면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이 모임에 대해 나오는 또 다른 얘기들은 트럼프의 기억과 약간 다르다. 예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는 푸엔테스에게 “매우 감명받았다”고 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푸엔테스의 조언을 경청했다.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은 예정된 대본인 텔레프롬프터를 읽는 대선 후보보다 거리낌 없는 트럼프를 더 좋아한다는 대목에 동조했다.
이날 회동 분위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부 언론이 과장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그날의 회동이 유대인 절멸을 결정한 나치의 반제 회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트럼프가 반유대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푸엔테스와 만난 것 자체만으로 그런 편견을 가진 이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과격한 행보 더 이상 안 통해그에 따른 파급 효과도 예상된다. 트럼프의 이번 정치 행보는 미국 정치 스펙트럼의 가장 추악한 측면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중간선거에서의 후퇴로 인해 트럼프가 약간 부드러워졌다는 경고가 극우주의 사이에서 퍼졌을 수 있다. 푸엔테스와의 만남은 이런 경고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
이번 만남이 상기시키는 중요한 사실은 경계를 넘나드는 정치적 행동을 즐기는 트럼프의 독특한 성향이다. 그는 7년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멕시코인과 존 매케인, 공화당 전체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연이어 쏟아낸 뒤 비슷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거짓의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지만 파괴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이 있다. 마침내 사람들이 트럼프의 끝나지 않는 서커스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Dinner at Hate for Donald Trump, Nick Fuentes and Kanye West’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