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배터리 원자재 중 하나인 흑연 가격이 급등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흑연은 중국이 공급망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광물이다. 대체 수급처를 찾기 쉽지 못해 배터리 공급망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는 최근 이런 전망을 내놨다. 음극재에 주로 쓰이는 구형 흑연의 지난 10월 기준 가격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 정도 올랐다. 다소 상승했지만, 올 들어서만 가격이 두 배 이상 급등한 리튬에 비하면 수급이 안정적이다.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면서 자동차 업계가 요구하는 흑연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내년부터 흑연 수요처의 50% 이상이 배터리 산업으로 바뀌면서다. 기존엔 철강 산업 등에서 내화재의 원료로 쓰이는 ‘마이너 금속’이었으나, 이제 용처가 달라지게 됐다. 배터리 산업의 수급이 흑연 수요와 가격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2025년엔 전체 흑연의 66%, 2030년엔 79%가량이 배터리 산업에 쓰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현상은 코발트와 리튬에서 똑같이 반복됐다. 생산된 코발트의 50% 이상이 배터리 산업에 쓰이기 시작한 2016년엔 코발트 가격이 폭등했다. 리튬의 ‘50%포인트’는 2018년이었다. 벤치마크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과 달리 흑연은 철강 산업 위축으로 가격이 안정세여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다”면서도 “곧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향후 10년간 흑연 수요는 연 평균 10.5% 증가하지만, 공급은 연 5.7%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흑연 공급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흑연은 내년부터 배터리 광물의 40%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강제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약한 고리’로 꼽힌다. 벤치마크에 따르면 중국은 흑연 채굴 시장의 64%를, 구형 흑연 제련 시장의 10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글로벌 흑연 광산 45개 중 30개를 운영하고 있다.
흑연 산업은 주문부터 채굴까지 리드타임이 긴 터라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에 나서기 쉽지 않다. 10년 뒤에도 구형 흑연 제련의 80% 이상은 중국이 맡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도 흑연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캐나다 호주 등 광산업체와 리튬 및 니켈 공급 계약을 잇달아 맺고 있지만, 흑연은 중국 이외 업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선 포스코케미칼이 유일하게 천연 및 인조흑연 공장을 갖추고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