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는 방금 다 떨어졌습니다. 재입고도 안 되니 돌아가세요.”
30일 낮 12시30분 서울 방배동의 한 주유소. 20L 약수통을 양손에 든 시민 한 명이 주유소 직원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 배달 기사인 그는 “주말에 휘발유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전국 주유소에 휘발유 재고가 급감하자 시민들이 비축에 나서는 등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멘트, 철강 등의 반출이 1주일째 막히면서 산업계 피해도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철강·레미콘·건설업 피해는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노조와 정부가 ‘강대강’ 극한 충돌로 치닫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총체적 산업 셧다운’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산업계 피해 1조원 돌파이날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휘발유 8일분, 경유는 10일분이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12월 8일부터는 시울 시내에서 휘발유를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주말부터는 아예 문을 닫는 주유소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에 있는 주유소 17곳을 돌아본 결과 7곳에서 휘발유 공급에 큰 차질이 있다고 답했다.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주유소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 기름 공급을 위한 배차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아 휘발유 총 12만L를 받지 못했다. 이 주유소 사장은 “내일부터는 주유소 근무 인력을 다섯 명에서 세 명으로 줄일 것”이라고 했다.
산업계는 누적 피해액을 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한국석유화학협회·대한석유협회 등이 피해액을 합친 결과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시멘트업계다. 성수기 기준 하루 18만~20만t을 출하했지만 현재는 10% 미만으로 급감했다. 하루에 180억여원씩 매출 손실이 발생해 누적 손실액은 1000억원을 넘었다. 대한건설협회 조사 결과 전국 459개 건설 현장 중 56%에 해당하는 256개 현장에서 레미콘 타설이 중단된 상태다.
석유화학업계도 하루평균 출하량이 평소(7만4000t) 대비 30%까지 급감했다. 하루 680억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선 완성차를 ‘로드 탁송(직원들이 직접 완성차를 몰아 운송하는 방식)’으로 출고하면서 인건비 등 관련 물류비 추가 부담만 하루 4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철강사들은 누적 60만t 규모의 출하 차질로 8000억원어치의 피해를 봤다. 건설사 관계자는 “전국 건설 현장의 3분의 2 이상이 이미 골조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나머지 현장도 내일부터 문제가 발생해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감을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개시명령에도 “운송 거부”업무개시명령에도 조합원들이 운송을 거부하고 있어 파업 상황은 장기화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른 산업계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시멘트 유통기지에선 오전 11시 기준 차량 4대만 기지로 들어왔다. 평상시(80대) 대비 5%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 사업장은 지난 24일부터 운송이 완전 중단됐다. 한 기사는 “조합원의 압박 때문에 운송을 못하고 있는데 오늘은 운행에 나설 수 있을지 상황을 보려고 현장에 나왔다”며 “트럭 할부금만 매달 300만원씩 나가고 있어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경찰의 강력 단속 방침에도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충돌은 이어졌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왔어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며 비노조 차주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운행을 방해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인천신항을 방문해 “운송 방해, 불법 폭행 등에 대해서는 현장 체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가 서울 지하철이 연착되는 등 곳곳에서 출근길 불편이 빚어졌다.
장강호/장서우/이혜인/원종환/구교범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