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코믹스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This is my gift. My curse. Who am I? I’m Spiderman(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것은 나의 재능이자, 나의 저주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스파이더맨이야).”
스파이더맨은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는 악당으로부터 시민을 지킬 ‘책임’이 있기에 주어진 ‘권한’인 초능력을 사용한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명언에서 인용했다고 알려진 이 대사를 떠올릴 때마다 현대사회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종종 정책 책임자들이 권한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없거나 자기중심적인 기준으로 판단해 그릇된 결정을 내리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권한과 책임의 순서와 범위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조직과 사회 구성원에게는 목표와 이를 달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목표 달성의 공적 수단으로 권한을 부여해준다. 즉 구성원마다 책임지고 목표를 달성할 의무가 있기에 그에 맞는 권한을 주면서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간혹 권한이 책임보다 크다고 생각하거나, ‘나의 소유물’이라고 착각해 사적으로 오용하는 구성원이 있다. 이를 권한의 남용이라고 한다. 반대로 책임이 결여돼 목표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직무 유기가 되고, 주어진 권한에 대한 정당성도 갖지 못하게 된다.
사전에서는 권한을 ‘어떤 사람이나 기관의 권리나 권력이 미치는 범위’라고 정의한다. 법률적으로 표현하자면 ‘타인을 위해 법률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이다.
효과를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얻게 할 수 있는 자격이므로 권한이 발휘되려면 나 이외의 대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권한을 사용할 땐 목적 수행의 범위 내에서,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과 조직에 미칠 영향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조직과 구성원이 권한과 책임의 범위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업무에 나설 때 높은 성과를 내게 된다. 반대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오·남용하면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대립과 갈등, 분열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임자라는 단어는 사용하지만 권한자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책임과 권한의 우선순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