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준공한 대구 풀필먼트센터(FC)는 쿠팡의 ‘비밀 기지’로 불린다.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할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다. 하루 전에 지원해도 사지 멀쩡하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쿠팡의 다른 물류 시설과는 격이 다르다. 총 3200억원을 투자했으며, 축구장 46개 넓이만 한 국내 최대 규모의 대구FC는 쿠팡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인공지능(AI)으로 중무장한 물류 로봇과 인간 노동의 최적 결합에 관한 거대한 실험실이 바로 쿠팡 대구FC다.'트로이의 목마' 전략 성공시킨 쿠팡
김범석 쿠팡 창업자(쿠팡Inc 대표)는 플라이휠의 신봉자다. 단기적으로 비용이 들더라도 초기에 엄청난 투자로 거대한 바퀴를 만들어 굴리는 순간, 수많은 작은 바퀴가 가는 거리보다 훨씬 더 멀리 갈 것이란 신념이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창업자를 철저히 벤치마킹한 것이긴 하지만, 제너럴모터스, 삼성전자, 월마트 등 글로벌 굴지의 기업 대부분이 플라이휠의 작동원리를 실현함으로써 왕좌의 자리에 올랐다.
쿠팡의 전략은 마치 트로이의 목마와 비슷하다. 그리스 정예군을 숨길 거대한 목마가 자신들의 땅에 세워질 때 트로이 사람들은 ‘무엇에 쓰일 물건’인 지 가늠조차 못했다. 김 대표가 수조 원을 들여 전국에 대형 풀필먼트센터들을 연달아 지을 때 국내 e커머스 시장의 경쟁자들은 ‘미친 짓일 뿐’이라며 폄하하고 조롱했다. 제조업이 아니라 유통업에서 쿠팡처럼 엄청난 고정 투자를 단행한 곳은 이제껏 없었다.
쿠팡에 대한 오랜 의심은 올 3분기에 흑자전환에 성공함으로써 완전히 일소됐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와 코로나19로 인한 비용 증가 등으로 약 9500만달러가량의 손실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쿠팡은 103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로켓배송이 나온 지 8년 만이다. 매출은 5조4784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만 800만제곱피트 규모의 물류 인프라를 증설하는 등 생산 설비 투자에 전년 대비 15%가량 돈을 더 쓰면서 흑자를 냈다는 점이 의미 있다. 쿠팡은 플라이휠의 무서움을 입증했다.
"로봇과 인간 노동의 결합"…김범석의 멈추지 않는 성장 스토리쿠팡의 다음 행보와 관련해 김범석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프로세스 최적화와 머신러닝·로보틱스를 포함한 자동화 기술에 지속해서 투자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제공하겠다” 2014년 로켓배송 서비스 개시 이후 전국적인 물류 네트워크 구축이 1단계 투자였다면, 앞으로는 현재 짓고 있는 신선식품 물류센터를 비롯해 모든 물류 인프라의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겠다는 설명이다. 핵심은 로보틱스다.
대구FC에서 쿠팡은 고객이 주문한 물건이 담긴 선반을 피커(picker) 앞으로 옮겨주는 AGV 로봇을 비롯해 수백 대의 분류 로봇들을 가동 중이다. 작업자들은 포장된 상품을 분류 로봇에 올려놓기만 하면 이들 로봇이 배송 지역별로 상품을 가져다 놓는다. 고객 주문과 함께 쿠친 트럭에 실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10분을 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쿠팡의 CFO(최고재무책임자)인 거라브 아난드는 "기술과 자동화, 공급망 최적화 등에 대한 투자의 결실로 프로덕트 커머스 분야(로켓배송 등)에서 매출총이익률이 전년 대비 7.2% 늘어났다"며 "장기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투자 원칙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 3자 물류, 핀테크 등 수익성 높은 사업들이 쿠팡의 흑자 기조를 지탱하는 한 앞으로도 경쟁자들을 압도할 투자를 단행할 것임을 짐작게 한다.
쿠팡의 이 같은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테크(Tech)와 이익(profit)의 선순환을 입증하려 한다는 점에서다. 로봇 물류는 아마존, 알리바바 등 굴지의 e커머스 기업들이 이미 격전을 준비 중이다. 아마존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외곽에 있는 혁신 연구소 및 로봇 제조 시설에서 최첨단 물류 로봇, 드론 배송, 전기 배송 차량 등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최근엔 스패로우라는 물류 로봇을 공개하기도 했다. 아마존, 알리바바도 뛰어든 로봇 물류의 미래서울대 인간중심 소프트 로봇 기술 연구센터장인 조규진 기계공학부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소프트웨어 혁명이 인류의 기술 진보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로봇을 통한 하드웨어 혁명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로봇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업이야말로 세계를 호령할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물류 로봇이 하드웨어 혁명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과 로봇이 결합한 로봇 혁명이 적용될 최적지이고, 한 번 적용이 되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로봇 제조사들이 물류 로봇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넘어야할 산도 크고 높다. 물류 IT 전문가는 “자동화는 겉으로 보기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비용 대비 효율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정치권과 노동계의 반발도 감수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메타 회장)가 메타버스라는 신산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위험 요인이 엄청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김범석 대표는 이순신 장군의 신봉자라고 한다. 영화 명량이 나오기 전부터 그는 임직원들에게 단 12척의 배로 수많은 왜선을 침몰시킨 명량 해전을 자주 언급하곤 했다. 의심과 비판 속에 지금껏 치렀던 김범석의 전투는 명량 해전에 가까웠다. 그가 준비하는 다음의 전투는 한산 대첩이 아닐까. 누구나 아는 전술이던 학익진을 물때와 바람, 적의 심리를 적절히 활용해 최고의 전술로 만들었던 이순신 장군처럼 로봇과 인간이 결합한 최적의 물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