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가요, 영화에 이어 이제 애니메이션 앞에도 ‘K’ 수식어를 붙여야 할 때가 됐다. 국내 기업이 만든 토종 애니메이션이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의 네트워크를 타고 미국 전역에 방영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 투빗이 만든 ‘하니와 숲속친구들’.
이 회사를 이끄는 김영화 대표는 25일 기자와 만나 “하니와 숲속친구들의 영어 및 스페인어 버전이 내년 4월 디스커버리 패밀리 채널 등을 통해 미국 전역에 송출된다”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는 주말 아침 프라임 타임으로 잡혔다”고 말했다.
자체 제작한 작품 위주로 채널을 운영하는 워너브러더스가 한국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김 대표는 “세계 모든 애니메이션 업체의 최대 목표인 ‘미국 전역 방송’을 달성한 셈”이라고 말했다.
2014년 투빗을 설립하기 전까지, 김 대표의 경력은 애니메이션과 무관했다. 한양대 성악과를 다니다 우연히 접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푹 빠져 개발자가 됐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은 그는 그래택(곰TV)에서 사업총괄을 맡았고, 게임업체 위메이드에선 총괄본부장으로 일했다. 김 대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접했다”며 “그때 얻은 결론이 ‘콘텐츠 경쟁력은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었고, 이후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니와 숲속친구들 원작자인 엄서영 공동대표와 함께 회사를 설립하고 작품 개발에 나섰다. 목표는 처음부터 국내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었다. 이를 위해 실력 있는 해외 작가들과 손잡았다.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스폰지밥’ 작가인 데릭 아이버슨을 하니와 숲속친구들 스토리 작가로 섭외하는 식이었다. 글로벌 세일즈 프로듀서 자리에는 마블 애니메이션 부문 최고경영자(CEO)였던 에릭 롤만을 앉혔다. 그는 “미국에 한국법인보다 10배 많은 100명을 두고 해외 네트워크 확장에 집중했다”며 “이렇게 쌓은 탄탄한 네트워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니와 숲속친구들은 국내에선 SBS와 인터넷TV(IPTV) 3사 등에서 방영되고 있다. 사계절 숲속을 배경으로 하니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총 52부작으로 4K 화질의 3차원(3D) 애니메이션이다.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메타버스나 게임 속에 들어온 것처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성악가 출신답게 음악 완성도도 높였다. 김 대표는 “워너브러더스는 하니와 숲속친구들이 게임, 음원, 굿즈 등 수익사업으로 확대하기 좋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목표는 한국산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K팝이나 K드라마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은 가요나 드라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이걸 K팝, K드라마만큼 끌어올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이 과정에서 다른 K애니메이션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돕는 ‘도우미’ 역할도 할 겁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