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은 사교육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한국경제신문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가 정보 데이터를 분석했다.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대치동(강남구)과 목동(양천구) 학원가 등의 입시 학원 수가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6월말부터 올해 9월말까지 분기별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봤다.
■ 대치동의 강남구 ‘부동의 1위’분석 결과, 해당 기간 동안 강남구는 입시 학원 수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했다. 양천구는 세 차례(2020년 12월말, 2021년 6월말, 2021년 9월말) 서초구에 밀려 3위였지만, 나머지 기간은 2위 자리를 지켰다.
서초구가 양천구에 이어 3위를 차지했고, 송파구가 4위로 나타났다. 송파구는 2020년 6월말엔 광진구에 이어 5위였지만 2020년 9월말부터 광진구를 제치고 줄곧 4위를 유지했다. 반면 광진구는 송파구에 밀린 후, 노원구와 강동구에 차례로 뒤지면서 7위 이하로 밀려났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면, 대치동이 포함된 강남구가 부동의 1위를 지킨 가운데, 양천구가 2위, 서초구와 송파구가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함으로써 강남3구와 양천구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이어 5위는 노원구, 6위는 강동구의 순이었고, 팬데믹 초기 4위에 올랐던 광진구는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
■ 팬데믹 기간 강남구 입시 학원 급감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강남구가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입시 학원 수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6월말 1145개였던 강남구 입시 학원 수는 2021년 12월말 486개로 줄었다. 1년 6개월 사이 입시 학원 수가 42.4%로 감소한 것이다. 이후 다시 증가세를 보여 올 9월말엔 560개로 48.9%까지 회복했다.
양천구는 2020년 6월말 648개에서 2021년 6월말 391개로 60.3%가 됐다가 올 9월말 459개로 70.8%까지 올라왔다. 서초구는 팬데믹 초기(2020년 6월말)의 60.9%까지 줄었다가 올 9월말엔 64.6%가 됐다. 송파구는 74.1%로 감소했다가 79.7%가 됐고, 노원구는 69.4%가 됐다가 78.0%까지 회복했다.
결국, 강남구의 입시 학원은 팬데믹 기간에 60% 가까이 사라진데 비해 나머지 지역들에선 감소율이 25~40%에 그친 것이다. 감소율 차이가 크긴 했지만 강남구의 입시 학원 수가 워낙 많아서 1위 자리가 바뀌지는 않았다.
■ 대치동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유연한 방식’강남구 입시 학원이 급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치동 학원가의 특수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대치동이 어떻게 사교육 1번지가 됐는지부터 살펴보자. 대치동은 1980년대말까지 강남의 주변부였다. 1990년대 들어 중고등학교 재학생의 학원 수강 금지조치가 풀리면서 강남의 주변부였던 대치동 일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사교육업체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강북 지역 명문고등학교의 강남 이전으로 ‘강남 8학군’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학생운동 참여 등으로 취업을 포기하고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 고학력의 강사군이 대치동에 공급된 점도 대치동을 사교육 1번지로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팬데믹 기간에 강남구 입시 학원이 급감한 이유로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유연한 방식’이라는 대치동 사교육 생태계의 특수성을 꼽을 수 있다.
박배균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과거 한 학술대회 발표자료를 통해 “대치동은 다른 곳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매우 전문적이며 특화된 사교육 서비스를 학생들의 다양한 필요에 맞추어 매우 유연하게 제공하고 있다”며 “이는 대치동의 사교육이 표준화된 강의를 전달하는 대규모 업체 보다는 소규모의 독립학원, 독립강사, 그리고 학부모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다양하고 차별적인 교육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독특한 생태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에 기반해, “다품종 소량생산의 유연한 방식이다보니, 팬데믹이 닥치자 그 수(입시 학원 수)가 급감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이상의 결과에서, 마케터가 주목할만한 포인트는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시장의 지역적 특성은 예전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상식, 다시 말해 ‘대치동 1위, 목동 2위, 강남3구 중심’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역시 전통적인 강자 중 하나인 노원구 외에 광진구가 반짝 강세를 보였다가 위축됐고 강동구가 부상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둘째, 위기가 닥치자 강남구 입시 학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급감)을 보인 이유가 ‘다품종 소량생산의 유연한 방식’때문이라는 점이다. 이 방식은 위기 이후 회복 국면에서도 가장 민감하게 반응(급증)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대치동의 ‘다품종 소량생산의 유연한 방식’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장경영 선임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수년 전 같은 학과에 재직하는 동료 교수가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는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대전'은 내가 생각했던 대전광역시가 아니라 '대치동 전세'를 말하는 것이었다. 동료 교수의 자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학원 근처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대전(대전광역시)에 직장이 있는 제자가 또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고 연락이 왔었다. 기숙사가 있는 지방의 고교에 진학한 큰 딸이 주말에 대치동에 있는 학원을 다녀야 해서 과감하게 대전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했단다.
여기에서 우리는 '로컬리티'라는 개념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로컬리티’는 ‘장소성’ 혹은 ‘장소 정체성’(place identity)라고 불린다. 이 개념은 장소라는 물리적 환경, 그 속에서의 인간 활동, 그 활동을 통한 의미라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관객수 1426만명을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의 ‘로컬리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해방 후 외국에서 돌아온 귀환동포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을 중심으로 부산에 국제시장이 형성됐다. 다양한 지역의 출신자들로 돌아갈 곳이 없었던 국제시장 상인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기적이고 모험적인 거래방법을 선택했고, 무허가 시장 철거에 저항해야 했으며,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물품이나 밀수품 단속을 피해 도망다니면서, 권력과 결탁해 공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연구는 국제시장의 로컬리티를 “국제시장은 권력에 의해 쫓기고 도망다니면서 부를 쌓아온 역동적인 모습,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거래를 성사시키는 모험성, 다양한 구성원들이 융합되면서 장소 애착을 느끼는 점에서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즉, 국제시장이라는 장소에서, 귀환동포와 피난민들이 역동적이고 모험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개방성과 다양성이라는 의미를 만들어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교육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치동의 로컬리티는 어떠한가. 수많은 입시학원들이 위치한 대치동이라는 장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입시학원 운영자들이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활발하게 교류함으로써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라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라고 할만하다. 즉, 학원 선생님들의 실력이나 수강생들의 성과가 아니더라도 단지 대치동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충분히 어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컬리티(장소성)’를 활용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앞으로도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기사의 자료분석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거치면서도 대치동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이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 또한 이 곳으로 나타났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특징지어지는 대치동 학원가의 특징이 비대면 시대로의 전환에는 적합하지 않은 서비스 방식일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자료이며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라는 타이틀을 지키고자 한다면 본 결과에 좀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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