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하자 주택 수분양자들이 건설·시행사를 상대로 분양 대금을 낮춰달라고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곳곳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분양 해소를 위해 할인분양에 나서는 현장이 많아지면서 이 같은 분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신길AK푸르지오 도시형생활주택 수분양자 수십 명은 대우건설과 대한토지신탁 등을 상대로 “분양대금을 20% 인하하고 중도금 대출을 무이자로 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다. 대우건설 등은 작년 11월 오피스텔 96실과 도시형생활주택 286가구의 신길AK푸르지오를 분양했다. 방 한 칸과 거실로 구성된 전용면적 49㎡ 도시형 생활주택을 8억4339만~8억9970만원에 내놓자 최고 청약 경쟁률 129 대 1을 기록하며 완판됐다. 당시만 해도 인근 신길뉴타운 전용면적 59㎡ 아파트가 14억원을 호가하는 등 부동산 경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불과 1년여 만에 시장 상황이 돌변해 방 세 칸에 화장실 두 개인 신길뉴타운 아파트가 9억9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오는 지경이 됐다.
그러자 수분양자들은 분양대금 감액과 중도금 지원 등을 요구하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수분양자들은 “지난 7월 금리 연 4.7%로 중도금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난달 돌연 금리 6.987%로 대출을 받으라고 말을 바꿨다”며 “아직 중도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금을 포기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관계자는 “분양 계약 해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수분양자들과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시행사와 수분양자의 분쟁은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다. 자이에스앤디가 지난 5월 대구 수성구에서 분양한 ‘만촌자이르네’의 한 계약자는 최근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계약 취소 등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의자를 던져 단지 모형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대규모 미분양 단지가 속속 할인분양을 시작해 기존 분양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대우건설이 상반기 경기 파주시에서 분양한 주거용 오피스텔 ‘운정푸르지오파크라인’은 최초 6억7000만원대에 분양한 전용 84㎡를 현재 5억원대에 분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구 ‘칸타빌수유팰리스’, 구로구 ‘천왕역모아엘가트레뷰’ 등 중소 건설사 소규모 단지들도 최초 분양가보다 수억원 낮은 가격으로 분양 중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