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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세계 어린이들의 슈퍼스타인 핑크퐁 아기상어. ‘글로벌 대박’의 출발지는 바로 동남아시아였다. 2017년 인도네시아 아침방송을 시작으로 아기상어 영상에 맞춰 노래와 춤을 따라 하는 ‘베이비 샤크 챌린지’가 퍼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영상 조회 수가 폭등한 걸 확인한 제작사 더핑크퐁컴퍼니 직원들은 재빠르게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로 날아갔다. 동남아 유행에 민감한 ‘필리핀 유모’들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일하면서 핑크퐁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2. 결혼 정보 플랫폼 스타트업인 웨딩북은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베트남 평균 연령은 32.5세. 젊은 인구가 많은 만큼 웨딩시장의 급성장을 예상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폐쇄적인 베트남 웨딩시장에 파고드는 것을 목표로 삼성전자와 함께 웨딩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남아 기업 투자·협업도 활발
한국 스타트업들이 동남아로 향하고 있다. 네이버 손자회사이자 리셀(재판매) 플랫폼인 크림은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플랫폼 기업인 PT카루니아 인터내셔널 시트라켄카나에 약 20억2600만원을 투자해 지분 19.73%를 취득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태국 사솜컴퍼니, 말레이시아 셰이크핸즈 등 주요 동남아 리셀 플랫폼에 이미 투자한 크림이 인도네시아 회사에까지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크림은 “글로벌 진출을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동남아 스타트업에 돈을 넣거나 현지 합작법인을 세우는 건 크림뿐만 아니다. 컬리는 지난 9월 알리바바그룹 산하의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라자다 계열사인 레드마트에 마켓컬리 브랜드관을 열고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라이프스타일 앱 ‘오늘의집’ 운영사인 버킷플레이스는 지난해 싱가포르 온라인 가구 플랫폼 힙밴을 인수했고, 야놀자의 솔루션 자회사 야놀자클라우드는 아예 본사를 싱가포르에 뒀다.
프롭테크(부동산기술) 스타트업인 알스퀘어는 올초부터 동남아 주요 국가 빌딩과 오피스, 공장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에서 상업용 부동산 30만 곳의 정보를 수집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와 합작법인 우아DH아시아를 설립했다. 외식 문화가 발달한 동남아 주요 도시들의 배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동남아가 ‘기회의 땅’인 까닭은주요 스타트업이 글로벌 진출 교두보로 동남아를 선택한 건 젊고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동남아 공략에 힘쓰고 있는 알스퀘어 관계자는 “인구 구조상 젊은 층 비율이 높고 정보기술(IT) 적응도 빨라 한국 기술 기업이 진입하기 좋다”고 말했다. 동남아 국가들의 평균 연령은 31.2세로 한국(43.4세)보다 훨씬 낮다.
동남아 인구는 6억7300만 명이다. 인터넷 사용자 수는 지난해 기준 4억4000만 명으로 2019년(3억6000만 명)과 비교해 빠르게 늘었다. 스마트폰 침투율도 100%를 넘는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국내 플랫폼·솔루션 스타트업에 유리한 점이다. 야놀자클라우드 관계자는 “숙박업체에 솔루션을 소개하고 있는데, 동남아 도시들엔 새로 생기는 숙박업체가 많아 시장에 진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했다. 미국 도시화율과 비교했을 때 동남아 도시들은 현재의 두 배가량의 도시화 여력이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벤처캐피털(VC)도 규제가 심한 중국의 대체지로 동남아를 선택하고 있다. 2015년 19억달러(약 2조5700억원)였던 동남아 시장 VC 투자액은 지난해 257억달러(약 34조8000억원)로 불었다. 물가가 저렴해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몇 차례의 성공적인 인수합병(M&A) 사례가 나오면서 투자금 회수 기대가 커진 것도 동남아가 한국 스타트업에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이유다. 창업자 54% “동남아 진출 고려”창업할 때부터 동남아 시장을 노리는 국내 스타트업도 있다. 임새롬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글로벌팀장은 “과거 스타트업이 주로 스케일업(사업 확대) 과정에서 글로벌 진출을 추진했다면, 요즘엔 창업할 때부터 해외시장 비중을 높게 두고 직원도 해외에 배치하는 곳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최근 창업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창업자들은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지역으로 동남아(54.5%)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북미권(미국·캐나다)과 일본, 유럽 등을 앞섰다. 1년 전 같은 조사에서 미국이 1위(39.0%), 동남아는 2위(25.6%)였던 것에서 순위가 뒤바뀌었다.
한국의 교육·의료 인프라와 플랫폼 경험을 현지에 적용시키거나 연결하는 방식의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미용의료 플랫폼 마이비너스를 운영하는 써밋츠는 서비스 시작 8개월 만에 회원 수 1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보다 의료 규제가 느슨한 인도네시아의 미용의료 시장을 뚫었다. 베트남에서 아이돌봄 서비스를 하는 야호랩은 15개월 만에 보육교사들의 누적 돌봄 시간이 6000시간을 넘었다. 베트남 육아맘 커뮤니티를 만든 베베리아는 인증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커머스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치밀한 전략 세워 진출해야”치밀한 전략 없이 동남아에 진출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 멀티채널네트워크(MCN) 업체인 크리에이토리의 진현욱 대표는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연 ‘동남아 스타트업 생태계 세미나’에서 “한국 창업자들이 베트남에 진출했다가 빠르게 포기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허다하게 목격했다”며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있더라도 법무와 세무 문제,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지 공동창업자를 구한 다음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동남아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4000달러(약 540만원) 수준으로 구매력이 낮은 것도 플랫폼 창업자에겐 난관으로 여겨질 수 있다. SV인베스트먼트의 싱가포르 지사와 인도네시아 사무소를 총괄하는 방정헌 상무는 “동남아에 진출한 스타트업은 ‘왜 트래픽은 나오는데 돈은 안 벌리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소득 수준과 구매력이 아직 낮기 때문”이라며 “헬스케어, 패션, 게임 등 생계와 직접 연관이 없는 산업은 결제 문턱이 높아 진입 시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스타트업이 현지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금 규모가 한국보다 작은 데다 현지 VC가 비(非)동남아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는 일도 드물다는 것이다. 투명한 자금 조달과 관리를 위해 금융업이 발달한 싱가포르에 법인을 내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베트남판 마켓컬리로 불리는 샤크마켓의 정성원 대표는 “베트남엔 자회사를 세우고 지주사를 싱가포르나 한국에 두길 권한다”며 “현지에서 완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우수한 사람들과 교감하면 고구마 줄기 캐듯 훌륭한 인력을 영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