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3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화상 면담에서 ‘한국 기가팩토리’를 언급한 것은 전기차 시장과 배터리 공급망,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국의 장점이 폭넓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130만 대가량을 만들 것으로 예상되는 테슬라는 2030년엔 생산능력을 연 2000만 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운영 중인 미국, 유럽, 중국 공장 외에 아시아에 추가 생산기지가 필수적인 이유다. 최종 결정은 내년 상반기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韓, 테슬라 아시아 허브 되나
테슬라는 미국 프레몬트(캘리포니아)와 오스틴(텍사스), 중국 상하이, 독일 베를린 등 네 곳에서 완성차 공장을 가동 중이다. 작년 한 해 93만 대를 만든 테슬라는 2030년엔 2000만 대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전기차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전략이다.
머스크 CEO는 지난 9월 테슬라 연례 주주총회에서 “연 생산 2000만 대 달성을 위해서는 생산기지 다변화가 매우 중요하다”며 “기가팩토리가 최소한 10~12곳은 돼야 하고, 공장마다 150만~200만 대는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슬라는 상하이에 공장이 있지만 이곳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내수용 성격이 강하다. 잠재력이 큰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아시아 기가팩토리가 필요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머스크 CEO가 한국을 ‘최우선 후보’라고 언급한 것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생산기지상 한국의 강점으로는 잠재력이 큰 내수시장, 배터리 등 부품 공급망, 세계적인 FTA망 등이 꼽힌다. 테슬라는 지난해 한국에서 1만7789대를 판매했다. 공급망 경색으로 사실상 국내에 물량 배정이 되지 않고 있는 올해도 10월까지 1만3038대를 팔았다. 최근 글로벌 제조기업은 저임금국가에서 만들어 수출하던 과거 흐름을 바꿔 구매력이 크고 수요가 많은 곳으로 직접 진출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테슬라도 유럽 내 공장을 동유럽이 아니라 자동차 본고장 독일 베를린에 짓는 결정을 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의 배터리 공장과 최고 수준의 부품 공급망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한국의 장점이다. 제너럴모터스(GM)가 끊이지 않는 노사 갈등에도 국내 공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부품 공급망의 장점을 높이 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80여 개국과 FTA를 맺고 있는 것 또한 수출기지로서의 한국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FTA를 이용해 미국 유럽 중남미 등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인니·말레이·태국 등과 경쟁테슬라가 추가 기가팩토리 장소로 한국을 결정할 경우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는 지각 변동을 맞게 될 전망이다. 국내에는 5개 완성차 기업이 있지만 사실상 현대자동차그룹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을 정점으로 부품 등 관련 생태계가 아래를 받치는 구조다.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이자 혁신의 대명사인 테슬라가 국내에 직접 진출하면 산업 내에 또 다른 축이 생기게 된다. 기가프레스 등 혁신적인 생산기술도 자극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테슬라가 내년 상반기께 투자 지역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담팀을 구성해 투자 유치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전투적 노사 관계와 고임금은 단점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잠재적인 경쟁국가도 변수다. 최근 배터리 원재료 확보가 전기차 생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이들 국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편 이날 화상면담에서 거론된 ‘통신 협력’과 관련해 통신업계는 스타링크의 한국 진출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스타링크는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다. 이 기업은 홈페이지에 내년 1분기 서비스 지역에 한국을 표시해 놨다.
박한신/좌동욱/이상은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