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늦으리"…기업들, 직상장 대신 몰려간 곳

입력 2022-11-23 07:14
수정 2022-11-23 07:37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던 업체들이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SPAC)합병'으로 몰리고 있다.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IPO 시장의 유동성이 메말라 스팩합병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자금조달이 급한 기업들로선 안전하게 증시에 입성할 수 있는 선택지인 만큼 얼어붙은 시장 상황에서도 스팩합병을 찾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하인크코리아 등 총 14곳이 스팩합병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다음달 예정된 핑거스토리(12월 8일)와 신스틸(12월 23일)까지 합하면 총 16곳이 스팩합병으로 상장한다. 이는 IPO 시장이 역대급으로 호황이었던 지난해(15곳)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이밖에 상장 승인이 완료됐지만 상장하지 않고 있거나 내년 상장이 예정된 업체는 총 6개사,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곳은 총 9개사다. 모두 이르면 내년 상장할 가능성이 높다.

스팩이란 비상장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는 목적으로 증권사가 설립한 서류상 회사다. 스팩과 비상장사가 합병하는 방식으로 상장하는 게 스팩합병이다. 일반 상장과 달리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아 IPO 침체기 속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기 어려운 요즘 같은 때 직상장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수요예측이 공모 과정에서 빠지다 보니 일반 상장보다 절차도 간단하다. 공모자금이 고정돼 있어 변수가 적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자금 조달 규모가 일반 상장보다 적다는 점이 한계다.
스팩합병을 추진하기도 녹록지 않다. 올해 스팩합병으로 상장한 14개사 중 8곳의 주가가 공모가(2000원)를 밑돌고 있다. 최근 온라인 가구 유통업체 스튜디오삼익은 IBKS제13호스팩과의 스팩합병 과정에서 주주 반발로 합병이 무산됐다. 스팩 합병안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된 것은 2012년 이후 약 10년 만이다. 올 들어 IPO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업가치 평가 논란'이 합병 좌절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당초 IPO 시장도 잔뜩 움츠러들었다. 고금리에 IPO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지 않고 있어서다. 금리가 오르면 예·적금과 같은 안전자산을 쫓는 경향이 강해진다. 또 시장 불확실성에 투자심리가 대폭 위축되면서 기업들을 향한 눈높이도 높아지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연말 시장의 니즈가 줄어들면서 발행사 부담이 커지는 점도 상장 미루는 원인으로 분석된다"며 "연초로 넘기려는 업체들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옵티코어는 오는 12월 28일로 예정했던 상장일을 내년 1월 초로 미뤘다. 최근 바이오인프라, 밀리의서재, 라이온하트스튜디오 등이 증시 입성 문턱에서 상장을 철회한 이유다. 올 들어 총 12곳(현대엔지니어링·현대오일뱅크·SK쉴더스·원스토어·골프존커머스·CJ올리브영·태림페이퍼·케이뱅크·라이온하트스튜디오·밀리의서재·제이오·바이오인프라)의 상장이 불발됐다.

그럼에도 자금조달이 급한 기업들에 스팩합병은 최후의 보루인 만큼 수요가 몰리는 편이라고 IPO 시장 관계자는 전했다. 올 2월 '스팩소멸' 방식의 합병이 허용된 점도 스팩합병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원인으로 분석된다. 과거엔 스팩만 남고 합병되는 기업은 사라지는 방식의 합병만 존재했다면 이제는 스팩이 소멸되고 기업은 존속하는 방식의 합병 방식 또한 가능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스팩소멸 방식 도입 후 계약서, 특허, 사업자등록 등 기업으로선 상장 후처리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줄어들면서 합병 절차가 간단해졌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곳 9개사 중 6개 업체가 스팩소멸 방식을 택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과거와 달리 스팩을 통해 확보 가능한 자금이 다양해진 점도 기업들의 선택 폭을 넓혔다"며 "스팩합병 수요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