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수신차단 전화도 '스토킹'"…드디어 유죄 판결 [오현아의 법정설명서]

입력 2022-11-22 16:40
수정 2022-11-22 16:55

상대방이 받지 않은 전화도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놔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유사한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한 판단이 나왔습니다.

인천지법 형사18단독 김동희 판사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42·남)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습니다.

A씨는 지난 8월 11일부터 9월 27일까지 B씨에게 29차례 전화를 걸고 33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 스토킹을 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B씨와 지난 6월 헤어진 A씨는 "연락하거나 찾아오지 말라"는 부탁을 받고도 계속해서 이러한 행동을 저질러왔습니다.

29차례 전화 가운데 12차례는 B씨가 받지 않았으며, 9차례는 B 씨가 수신을 강제로 차단했습니다. 더욱이 A씨는 B씨 집에 찾아가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지 기다리기도 했으며, 현관문 잠금장치를 파손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B씨가 받지 않은 전화와 수신이 차단된 전화 모두 '스토킹 행위'라고 봤습니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정보통신망'이 아닌 '전화'를 이용해 음향(벨소리)이나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인 '글'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했다"며 "이런 행위는 스토킹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죠.

즉,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벨소리를 울리거나 자신의 전화번호를 띄우는 행위 역시 피해자에게 불안감 혹은 공포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라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김 판사는 또 A씨에게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엇갈린 판결, 스토킹법 없을 당시 판례 근거로 들어...
"법 기술적으로 해석하면 피해 맥락 못봐"
이는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와 상반된 판단입니다. 최근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와 형사10단독 현선혜 판사는 A씨와 유사한 스토킹 범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두 판사는 "상대방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다"라거나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나 발신 번호가 표시됐더라도 이는 휴대전화 자체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스토킹처벌법 2조가 스토킹 행위 중 하나를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음향·그림 등에 도달하게 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말을 해석하기 위해 두 판사는 2005년 선고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나 위와 같은 제한적인 해석의 판결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2005년은 스토킹처벌법이 없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반복된 전화 등 스토킹과 유사한 행위를 처벌하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최근 스토킹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되며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돼 지난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정보통신망법과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목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판례'라는 기존 해석을 그대로 적용한거죠.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해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 8일 성명서를 통해 "스토킹 행위의 정의 규정을 지나치게 법 기술적으로 해석해 스토킹 피해 행위의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여변은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대해서도 "스토킹 행위 유형을 다섯 가지로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제한적 열거 방식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스토킹 행위를 제대로 포섭할 수 없고 피해자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토킹 피해 현실, 범죄의 특성, 진화하는 스토킹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되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무죄를 받은 두 사례 모두 항소해 2심의 판단을 받아 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입법 기준도 바뀌어야겠지만, 상급심에서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스토킹 범죄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확립해 줄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