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시작한 출근길 회견(도어스테핑)을 21일 잠정 중단했다. 지난 18일 출근길에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이 고성으로 언쟁을 벌이며 소동을 빚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대통령실과 출입기자단은 이와 관련한 징계 문제 등에 상당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도어스테핑 중단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6개월 만에 자체 중단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1분께 용산 대통령실 1층에 도착한 뒤 곧장 집무실로 올라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출근 직전 대변인실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21일부로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도어스테핑은 국민과의 열린 소통을 위해 마련됐다”며 “그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재개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이 코로나19 재확산이나 이태원 압사 참사 등 외부 요인이 아닌, 내부 판단으로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휴일인 지난 20일 평소 출근길 기자들과 문답이 이뤄지던 대통령실 1층 로비에 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림막을 세웠다. 대통령의 출퇴근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차단한 것이다.
도어스테핑 중단 결정은 최근 동남아시아 순방 당시 MBC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여파라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이 18일 순방 후 첫 도어스테핑에서 “국가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 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는 아주 악의적인 그런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하자 MBC 출입기자는 “어떤 게 악의적이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자와 도어스테핑을 담당하는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 간 설전도 벌어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주말 5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1일 브리핑에서 “고성이 오가고 난동에 가까운 행위가 벌어졌고 재발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도어스테핑을 유지하는 건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하려는 본래 취지를 오히려 위협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김영태 대외협력비서관이 이날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고, 바로 수용됐다.尹, 온건파 대신 강경파 손 들어줘대통령실 관계자는 도어스테핑 재개 조건에 대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더 나은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재개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발 방지 대책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기자단 간 입장 차가 커 중단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MBC 탑승 배제와 관련해 홍보수석실 내 강경파로 꼽히는 이 비서관이 유임되고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김 비서관에게 사실상 책임을 물은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탰다.
대통령실 출입기자 간사단은 이날 김은혜 홍보수석이 요청한 ‘운영위원회(간사단) 소집 및 의견 송부 요청’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출입기자 징계 등을 위해 간사단 의견을 요청했으나 간사단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간사단은 “특정 언론과 대통령실의 대결 구도가 이어지면서 이번 사안과 무관한 다수 언론이 취재를 제한받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는 입장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