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영방송 BBC가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을 생중계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카타르 월드컵을 둘러싸고 제기된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해 서방의 비판 여론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21일 영국 일간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BBC의 대표 채널인 'BBC 원'은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 시작 2분 만에 생중계를 중단하고 온라인 서비스 등 다른 채널로 개막식을 중계했다.
개막식 대신 나온 BBC의 축구 전문 프로그램 '매치 오브 더 데이'의 진행자 게리 리네커는 "이번 대회는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월드컵"이라고 말했다.
리네커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2010년 개최지로 카타르를 선택한 이래 이 작은 나라는 유치 과정에서 뇌물 혐의, 경기장을 건설하다가 여럿이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 등 몇 가지 중대한 의혹에 직면하게 됐다"며 "아직 동성애도 불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배경에도 전 세계가 관람하고 즐기는 대회가 열린다"며 "FIFA는 '축구만 고수하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가디언은 BBC 측이 이같이 결정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리네커의 짧은 연설과 이후 프로그램 내용을 볼 때 개최지 카타르를 둘러싼 인권 논란에 대한 항의 차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카타르는 동성애가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들은 인권 문제로 유럽 등 서방과 대치해왔고, 잉글랜드, 웨일스 대표팀은 독일과 함께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날카롭게 날을 세웠던 나라다.
카타르는 이번 대회를 위해 경기장 신축뿐 아니라 축구장을 연결하는 지하철을 깔고, 도로, 쇼핑몰, 병원 등 도시 인프라를 사실상 새로 정비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쏟았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는 지난 15일 카타르가 이번 대회를 위해 3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것으로 추산했다. 가디언은 "카타르는 월드컵 개막식에 수백만 파운드를 쓰고도 서방 언론의 초점이 이주노동자 처우와 동성애 금지에 맞춰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카타르의 도하에 본사를 둔 아랍 매체 알자지라는 이 소식을 전하며 "BBC가 개막식을 '2부 중계'로 격하시켰다"고 질타했다. 이어 "'포용'을 주제로 했던 개막식을 방영하는 대신 (BBC) 출연진이 인권을 설명했다"고 꼬집었다.
이후 BBC 측은 성명을 내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BBC 아이플레이어(iPlayer) 등을 통해 이번 월드컵의 모든 행사에 대한 보도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