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세액공제 美 25%인데…韓 국회는 "20%도 특혜"라며 발목

입력 2022-11-18 18:22
수정 2022-11-28 16:55
반도체 기업의 설비 투자에 대한 미국의 세액공제율은 25%다. 대만은 연구개발에 25%, 첨단 설비 투자에 5%를 세액공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반도체 대기업 시설 투자에 20% 세액공제를 주자는 법안에 대해 야당에서 ‘대기업 특혜’라는 반발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패권전쟁이 벌어지면서 각국이 속속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한국만 안일하다는 지적이 많다. 美·日 공세에 대만도 파격 지원
대만은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와 3위 업체 UMC를 보유한 반도체 강국이다. 애플, 퀄컴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TSMC에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 경쟁국들이 최근 반도체 투자를 강화하면서 내부적으론 ‘언제 주도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대만 정부가 지난 17일 반도체 제조사 등 기술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한 이유다. 첨단장비 투자는 추가 5% 세액공제가 제공된다.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 장관은 세액공제 확대는 대만에 R&D 센터나 관련 자회사를 설립한 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는 반도체산업 육성에 향후 5년간 2800억달러(약 375조원)를 투입하는 걸 핵심으로 하는 ‘반도체 및 과학법’을 지난 7월 통과시켰다. 이 법에는 반도체 R&D 분야 등에 총 520억달러(약 70조원)를 투입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담겼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대폭 끌어올리기 위해 인텔을 비롯해 삼성전자, TSMC 등의 반도체 공장을 미 본토에 유치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월 450억유로(약 62조원)에 달하는 ‘유럽 반도체 법안’을 제안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1조3000억엔(약 12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도요타와 소니 등 자국 기업 8곳이 함께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자, 정부가 700억엔(약 65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2015년 세웠다. 이를 위해 10년간 최대 1조위안(약 187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반도체특별법, 야당에 발목한국의 반도체 지원은 지지부진하다. 반도체업계는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현행 6%(대기업 기준)에서 적어도 10%, 가능하면 20% 수준으로 높여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세제개편안에서 이 비율을 8%로 올리는 데 그쳤다.

양향자 무소속 국회의원이 8월 ‘반도체특별법’으로 불리는 법 개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지만, 3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이 법에는 반도체 시설투자 시 대기업에 20%, 중견기업에 25%, 중소기업에 30%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안이 담겼다. 반도체 클러스터 등 특화단지를 조성할 때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학과 증원을 허용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반도체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여당 지도부의 요구도 거절했다. 양 의원은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반대는 나라의 미래를 땅에 묻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업계에선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사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뛰어왔는데, 이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S&P캐피털IQ 자료를 인용해 낸 자료를 보면 2018~2021년(평균) 한국 반도체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법인세 비용/법인세차감전순이익)은 26.9%다. 대만(12.1%), 미국(13.0%), 일본(22.3%)보다 높다.

최근 한국 반도체산업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92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7.4% 줄었다. 월간 기준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반도체 수출액이 100억달러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안방’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3분기 한국의 수입 반도체 공급지수는 311.8로 전년 동기 대비 50.8% 상승했고, 같은 기간 국산 반도체 잠정공급지수는 8.9% 높아졌다. 국내 제조기업들이 제품을 만들 때 해외에서 들여온 반도체를 더 많이 썼다는 의미다.

도병욱/허세민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