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물가가 40년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기록적인 엔저까지 더해져 수입 물가가 급등한 영향이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신선식품 제외)가 전년 같은 달보다 3.6% 상승했다고 18일 발표했다. 2차 오일쇼크의 영향을 받은 1982년 2월(3.6%) 후 최고치다. 시장 추정치(3.5%)도 소폭 웃돌았다.
일본 CPI는 14개월째 오름세로, 올 들어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1월 0.2%였던 CPI 상승률은 4월부터 2%를 넘었다. 9월 상승률은 3.0%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 등이 오른 가운데 환율이 직격탄을 날렸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엔·달러 환율은 29.2% 뛰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수입 비용이 불어난 일본 기업들이 식품 등 모든 제품 가격을 전반적으로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등 주요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게 엔저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당분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에너지·식품 수입 의존 높아…엔저 계속되자 물가 급등일본은 에너지와 식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에너지의 94%, 식품의 60%를 수입에 의존한다. 엔저가 심화되면 에너지와 식품 물가가 뛰어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10월 신선식품을 제외한 일본 식품 물가 상승률은 5.9%로 1981년 3월 후 가장 높다. 일본 리서치업체 테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에서 가격이 인상된 식품 가짓수는 6700개에 이른다. 에너지 물가 상승률은 15.2%로 전월(16.9%)보다 하락했지만, 13개월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도시가스 요금은 26.8%, 전기 요금은 20.9% 각각 올랐다.
10월 CPI 발표를 보면 물가 상승은 여러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조사 대상인 522개 품목 중 약 80%인 406개가 전년 같은 달보다 가격이 인상됐다. 9월(385개)보다 인플레이션 영향을 받은 품목이 늘었다. 이와시타 마리 다이와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더 많은 기업이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CPI는 지난 4월 이후 7개월째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물가 상승률 목표치(2%)를 웃돌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향후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환율이 진정되면 물가상승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는 이유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10월 CPI의 상승세가 상당하다”면서도 “내년에는 물가상승률이 2%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