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에 밀리고, 합병 대상 못 찾고…리스크 없다던 스팩의 '수난시대'

입력 2022-11-18 17:53
수정 2022-11-19 00:53
‘상승 잠재력이 있는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예·적금 등 다른 안전자산의 매력이 더 높아진 데다 올해 무더기 스팩 상장으로 합병 가능성은 더 낮아져서다.

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공모가 1만원에 상장한 하나금융25호스팩의 주가는 이날 9550원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달 20일 상장한 이후 한 달 동안 한 번도 공모가를 넘어서지 못했다. NH스팩19호, NH스팩20호, KB제20호, KB제21호, KB제23호, 대신밸런스제11호, 상상인제3호 등의 주가도 공모가(2000원)를 밑돌고 있다.


스팩은 비상장기업의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다. 상장 이후 3년 이내에 합병을 못 하면 자동으로 청산된다. 청산 과정에서 공모가와 일정 수준의 이자를 돌려주기 때문에 스팩 주가가 공모가보다 낮은 현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다른 안전자산의 수익성이 높아지자 스팩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다. 시중금리가 오르면서 은행 예·적금 금리 등 주요 안전자산의 수익률은 연 5%를 넘었다. 하지만 스팩 이자는 연 2%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청산되는 스팩이 지급하는 이자는 지난 3년간의 예금 금리를 기준으로 한다.

올해 역대 최다 건수의 스팩 상장이 이뤄지면서 투자자가 분산된 것도 스팩 주가가 힘을 잃은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신규 스팩 상장은 37건이 이뤄졌다. 연내 공모 절차를 진행하는 8곳을 포함하면 45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15년(45건)과 같다.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형 기업공개(IPO)가 줄줄이 철회되자 수수료 수익에 목마른 증권사들이 앞다퉈 스팩 상장에 열을 올린 결과다.

그동안 국내 스팩의 합병 성사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는데, 올해 많은 스팩이 새로 상장하면서 합병 대상을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스팩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도 스팩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공모가보다 주가가 낮은 스팩 중 KB제20호스팩과 대신밸런스제11호스팩 등은 각각 옵티코어, 라온텍과 합병 절차를 밟고 있다. 주관사가 제시한 합병 대상과의 합병비율에 주주들의 불만이 많다는 뜻이다. 합병 발표 이후 줄곧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던 IBSK제13호스팩은 지난 10일 스튜디오삼익과의 합병안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되기도 했다.

스팩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은 별도의 수요예측 절차가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 평가되는 기업가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주관사가 제시하는 합병비율(기업가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스팩 상장은 물론 합병 과정에서도 일반 상장기업에 준하는 수준으로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를 열어야 시장이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