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만 200만원?"…명품백 구매 서두르는 이유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2-11-19 16:44
수정 2022-11-19 17:34
“에르메스·샤넬 같은 1000만원 넘어가는 고가 명품은 워낙 값이 비싸 리셀 거래 수수료가 조금만 뛰어도 차이가 크네요. 수수료가 더 오르기 전에 사놓아야 할 것 같아요.”(30대 명품 마니아 박모 씨)

명품 리셀(중고 거래) 플랫폼 업계에서 수수료 인상 러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 그동안 무료 또는 미미한 수준이던 거래 수수료와 배송비를 대폭 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객이 느는 만큼 적자폭이 커지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네이버는 이달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자사의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크림'의 수수료 인상을 예고했습니다. 현재 거래 대금의 3% 수준인 거래 수수료를 연말 5%까지 올린다는 겁니다. 연초만 해도 1%였던 점을 감안하면 수수료 수준이 가파르게 뛰고 있습니다.

무신사의 리셀 자회사 솔드아웃은 무료 배송 정책을 폐기하고 올해 7월부터 배송료 2000원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명품 커머스 트렌비도 중고 명품 거래에 지난 8월부터 판매 금액에 따라 7.9~11.9%의 수수료율을 책정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이곳에서 1000만원 내외 명품 거래시 수수료만 100만원 정도 붙는다는 얘기입니다.


리셀 플랫폼은 샤넬·에르메스 등 명품이나 고가의 한정판 상품을 사고파는 곳입니다. 당근마켓, 중고나라에 비해 거래되는 상품의 가격이 비싸 크림처럼 중간에서 제품을 검수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고 상품을 검수하는 대신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냅니다.

그동안 명품 리셀거래 플랫폼들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와 할인 쿠폰, 무료 배송과 무료 수수료를 내세워 판매자와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아직 플랫폼 인지도가 높지 않아 '유입이 먼저'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업손실(적자) 규모가 커진 게 문제입니다. 이젠 생존을 위해 수수료 부과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트렌비는 지난해 330억원 적자를 봤는데 광고비로만 300억원을 썼습니다.

시장에선 예상치 못하게 리셀 플랫폼들 수수료 인상 조치가 인플레이션 국면과 맞물리면서 명품 리셀가 자체를 높이는 효과를 내고 있습니.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명품 리셀가가 워낙 고가인 탓에 수수료를 1%포인트만 올려도 비용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많은 명품 마니아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꼽히는 샤넬 클래식 미디움백을 예로 들어볼까요. 1300만원대(정가 1316만원)에 거래가 된다고 하면 수수료가 3%일 경우 그 비용이 39만원가량 나옵니다. 수수료가 5%까지 뛰면 비용은 65만원까지 상승합니다. 리셀가가 4000만원에 육박하는 에르메스 버킨 30 앱송 가죽백의 경우 수수료만 200만원(5% 기준)을 내야 하는 것이죠.


소비자들은 명품 구매를 서두르는 분위기입니다. 에르메스백 구입을 원하는 강모 씨(42)는 “내년에 에르메스 제품 가격이 5~10% 이상 오른다는데 리셀 수수료까지 뛰면 부담이 커질 것 같아 서둘러 구매 제품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리셀업자 김모 씨(34)도 “리셀 플랫폼들이 수수료를 높이면 소비자들에겐 가격 인상 효과를 줘 자연스럽게 전체 리셀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가를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며 “최근 값이 더 뛰기 전에 구매를 하겠다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샤넬, 롤렉스 등 매장이 문 열기 전부터 백화점 명품관 앞에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같은 수수료 영향도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명품 업체들의 잇단 가격 인상은 물론 리셀 플랫폼들의 수수료 인상 여파로 “명품은 지금이 가장 싸다”는 인식이 소비 심리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다만 리셀 거래 플랫폼들은 수수료 인상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합니다. 한 리셀 플랫폼 관계자는 “그동안 성장을 위해 이용자를 늘리려면 일단 적자를 견딜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엔 회사가 장기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안정적 수익구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최수연 네이버 대표도 크림 수수료 인상 배경을 놓고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수익성도 향상시켜나갈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