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 방지, 금융사만의 일 아니다"

입력 2022-11-20 09:40

“자금세탁 방지는 이제 금융회사만의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일반 기업의 자금 흐름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발생했는지도 확인하라는 요구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정영기 김앤장법률사무소 자금세탁방지팀장(왼쪽·사법연수원 35기)은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일반 기업들까지 자금세탁 범죄에 휘말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올해 개최한 세 차례의 총회에서도 금융회사 이외에 특정비금융전문사업자가 취득, 보관한 자금 역시 건전한 경영활동의 결과물인지 확인하는 준법감시를 강조했다”며 “국내에서 이 같은 내용을 법으로 제정해야 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같은 팀의 고철수 전문위원도 “FATF는 이미 핀테크라는 용어가 등장한 2014년부터 핀테크를 악용한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방법론을 고민했고, 가상자산 역시 마찬가지였다”며 “기업에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각종 의무를 요구하는 규제는 전 세계에 걸쳐 강화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금융정보분석원 출신인 고 위원은 FATF의 국가 상호평가자 등으로 활동한 이 분야 전문가다.

김앤장은 2012년 자금세탁방지팀을 꾸린 후 10년간 몸집을 거듭 불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금융감독원 출신인 신상훈·김승민 전문위원, 금융·플랫폼 기업에서 근무한 조세경·임이레 변호사 등 전문가들을 영입하며 전문성 강화에 힘쓰고 있다. 팀 인원은 30여명으로 국내 로펌업계에서 가장 많다. 현재 100개 이상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정 팀장은 “시중은행, 전자금융업체, 증권사, 금융당국 등에서 자금세탁방지 실무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로 조직을 꾸려 기업들에 종합적인 컨설팅 수준의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앤장이 자금세탁방지팀 덩치를 키우는 것은 이 분야에서 새로운 법률자문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최근 핀테크, 전자금융, 가상자산 등 새로운 금융산업이 탄생하면서 은행 등 전통적인 금융회사 외에도 투자 및 결제 등의 자금 이동 업무에 관여된 기업이 대폭 증가했다. 금융 및 통신기술 발전으로 국경 간 거래도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자금세탁 수법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기업들이 범죄에 휘말릴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유엔마약범죄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세탁된 자금 금액은 8000억~2조달러(약 1071조~267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 위원은 “특히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및 전자 토큰을 사이버상에서 다양한 경로로 200회 이상 이동시키고, 수십~수백회에 걸쳐 여러 범주로 모았다가 분산하기를 반복하다가 인출하는 수법이 속출하고 있다”며 “이 같은 자금세탁은 일반적인 방지기법으론 추적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팀장도 “세계 자금세탁의 80%가량이 무역금융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무역 규모 자체가 상당하기 때문에 은행 직원들이 일일이 현장에서 거래의 허위 여부를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제는 내부통제 강화 이상으로 정밀한 검증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팀장은 “예컨대 어떤 유형의 고객과 상품이 자금세탁에 악용될 소지가 큰지, 비대면으로 판매할 때 자금세탁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은지 등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의심스러운 거래를 발견했을 때 내부 보고는 어떤 체계로 진행해야 하는지 등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 위원은 “자금세탁은 100% 차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위험을 저위험으로 낮추는 내부 시스템을 얼마나 잘 구축했느냐가 중요하다”며 “준법감시부서의 적극성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의 강한 의지가 위험 관리능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