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나이키와 독일 아디다스가 두 손든 나라.
스웨덴 H&M과 같은 글로벌 의류 브랜드도 자취를 감춘 나라.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강력한 '불매운동'을 보여준 나라는 중국입니다. 나이키는 인권 문제가 부각된 신장위구르에서 원자재를 받지 않겠다고 밝혀 불매운동 대상이 됐습니다. 위구르족 인권 탄압에 목소리를 낸 아디다스와 H&M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중국의 '아픈 곳'을 꼬집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메르세데스 벤츠와 크리스티앙 디오르, 돌체앤가바나 등 굴지의 해외 브랜드도 중국 불매운동으로 '퇴출 위기' 굴욕을 맛보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한 번 마음 먹으면 외국 기업 불매운동과 자국 기업에 대한 애국소비 성향이 큽니다.
중국은 세계 2강(G2)으로 부상한 이후 '패권'을 두고 미국과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8년 초 무역분쟁을 시작으로 경제, 외교·안보, 기술패권 전쟁까지 사실상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도권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는 바로 '기술'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시장, 규제,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국제 규범과 질서를 선점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그 어느때보다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기술 신냉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살벌한 '기술패권' 전쟁에도 "아이폰 사랑" 못말려
하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와중에도 중국인들의 '아이폰 사랑'은 식지 않습니다. 지난 11일 중국 최대 쇼핑 축제 '광군제' 기간 중국인들은 스마트폰 브랜드 가운데 애플 아이폰을 가장 많이 구매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중국 광군절 온라인 쇼핑 축제 기간 스마트폰 브랜드 판매점유율(39%)과 매출점유율(68%)에서 애플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샤오미가 각각 판매점유율 31%, 매출점유율 13%로 2위를 기록했고 현지 브랜드 아너(Honor)와 오포(OPPO)가 뒤를 이었는데요.
올해 중국은 강력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봉쇄 정책으로 실업률이 상승하는 등 소비시장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0.5% 감소했습니다. 코로나19 정책으로 주요 도시가 봉쇄되고 소비력 저하, 소비 심리 냉각 등이 겹쳐 광군제 기간 스마트폰 판매량은 스마트폰 판매량(900만대)이 지난해보다 35%나 줄었지만, 애플이 70%에 가까운 매출액을 가져간 겁니다.
특히 지난 9월 아이폰14 시리즈를 내놓은 뒤 애플은 줄곧 중국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주간 판매량을 보면 애플은 아이폰14 시리즈 출시 이후 7주 간 판매량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아이폰13 출시 이후 첫 주를 제외하고 상당 기간 2위에 머물렀던 것과도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10월 마지막주 애플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9%에 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광군제 기간 중저가 스마트폰 판매 급증으로 애플의 점유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명품 이미지에 끌린다"…10년간 3.8억대 팔아치워
사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반미 정서'가 있는 국가입니다. 지금의 중국인 신중국(1949년)을 건국할 때부터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하면서 반미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중국은 "미 제국주의에 저항해 북한을 돕는다(항미원조)"는 명분으로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수십년간 미국과 적대적 관계(1950~1970년대)를 이어온 역사가 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역사적 문제와 별개로 양국이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내 새로운 반미 정서가 부각되는 추세입니다. 특히 중국이 부상해 점점 미국과의 '경쟁 구도'를 형성하면서 이런 경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 기업 화웨이가 미중 갈등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됐음에도 '애플 앓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웨이는 한때 삼성전자, 애플과 함께 글로벌 1, 2위를 다투는 휴대폰 제조사였지만 미국이 대만 TSMC로부터 스마트폰 반도체 부품 공급을 막으면서 점유율이 급락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이 애플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고가 전략과 명품 이미지가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중국에서 아이폰14프로 128GB(기가바이트)를 구매하려면 가격이 5999위안(약 112만8000원)에 달해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결코 싸지 않습니다. 작년 중국 대졸자 평균 초봉이 6043위안(약 113만원)을 기록했으니 일반적으로 신입 대졸 한 달치 월급을 고스란히 갖다 바쳐야 인기 모델을 살 수 있습니다. 아이폰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매한다는 얘기입니다. '사회적 체면'과 '과시 소비'가 두드러진 현지인들 성향이 아이폰을 구매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과시 효과'에 더해 애플의 가격 인하 정책 및 차별화된 소비자 경험, 중고 가격 경쟁력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중 갈등 속 '애국소비' 대상이었던 화웨이가 2년간 눈에 띄는 플래그십 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중저가 브랜드만 출시되고 있어 현지의 고가 스마트폰 대체제가 없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현지 브랜드들이 5000위안대 가격이 넘는 고급형 스마트폰을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애플의 성능과 운영체제(IOS) 등 사용자 경험 등을 고려해 '같은 값'이면 아이폰을 선택한다는 반응입니다. 덕분에 애플은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중국 시장에서 아이폰을 3억8000만대나 팔았습니다.
중국인들의 '아이폰 사랑'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강민수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은 "애플의 중국 고가 시장에서의 지배적 지위는 화웨이 부재, 타 브랜드의 고가 영역 진출 제한 등으로 인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충격에 비교적 민감하지 않은 해당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전체 중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또한 점진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