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스타트업 탐내는 사우디 정부…블록체인·디지털트윈에 '눈독' [김은정의 클릭 사우디④]

입력 2022-11-17 14:13
수정 2022-11-17 14:20
정부와 한국 기업들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고유가에 힘입어 네옴시티 등 초대형 프로젝트가 연이어 발주되고 있어서다. 각국과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은 이같은 '사우디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물밑 작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관찰한 외교,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현상을 바탕으로 '김은정의 클릭 사우디'를 연재해 정부와 한국 기업들의 사업 전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으로 경제, 문화, 사회 등 사우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 기간 동안 한국 주요 기업들과 잇따라 대규모 협약을 진행하면서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단일 프로젝트별 규모만 최대 수십조원에 달해 한국 경제에도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서입니다.

흔히 사우디와 협력이라고 하면 건설 부문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한국 건설이 사우디에 처음 진출한 건 1973년입니다. 이후 45년 간 1557억달러(한화로 약 209조원)의 공사를 따내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협력 부문이 과거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 건설 부문에만 협력 관계가 집중됐다면 최근 들어선 정보통신기술(ICT), 문화, 원자력발전 등 다양한 부문으로 이해관계가 맞닿고 있는 것입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형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비전 2030을 추진 중입니다. 건설 이외에도 교통, 관광, 문화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기업을 포함한 정부도 사우디를 대상으로 하는 전략의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실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해외 수주 지원을 목적으로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건설 뿐만 아니라 모빌리티·스마트시티·정보기술(IT)·스마트팜 등 다양한 부문의 기업들과 동행했습니다. 사우디의 변화하고 있는 경제 흐름에 맞춰 이른바 '새로운 카드'를 수주 전략으로 삼은 셈입니다.

원 장관은 이와 관련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문화, ICT, 원전 등 다양한 분야와 패키지를 이뤄 함께 수출하고, 발주처의 수요에 맞는 시스템과 콘텐츠도 제공할 방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우디를 찾은 한국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같은 정부의 의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원 장관은 해외 수주 지원단에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쌍용건설 등 대형 건설사 이외에 코오롱글로벌(건설인프라), 네이버랩스(IT·통신), 엔젤스윙(스마트건설), 참깨연구소(스마트시티), 토르드라이브(모빌리티), 모라이(모빌리티) 등을 포함시켰습니다.

사우디 현지에서 기업 발표회를 할 때도 모빌리티·스마트시티·IT·스마트팜 부문에 많은 시간을 배분했습니다. 사우디 방문에 참여한 박원녕 엔젤스윙 대표는 "드론으로 수집한 공간정보로 건설현장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을 주력으로 한다"며 "이번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기존 솔루션을 사우디 건설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봐도 확실히 관심의 대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우디 현지에서 만난 살레 빈 나세르 알 자세르 사우디 교통물류부 장관은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한국 중소기업들이 그들의 기술을 사우디에 적용할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로봇이나 IT 기술,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한국 스타트업, 벤처기업들의 설명이 인상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사우디 현지에서 진행된 한국 기업 발표회에서 당초 발표 초반만 청취하기로 했다가 흥미를 느껴 발표회가 모두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사우디 현지 관계자들은 사우디가 특히 이(e)스포츠와 게임 산업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즉위 이후 사회와 문화 개방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사우디 20~30대 젊은 층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우디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은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도나 선호도가 사우디 내에서 굉장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종교경찰 권한 축소, 대중 공연 허용, 영화관 개설과 여성운전 허용을 결정했습니다. 여기에 관광비자 발급과 외국여성의 아바야 착용 완화 등도 추진했습니다. 사우디 인구의 70%는 35세 이하입니다. 사우디의 총 인구는 3534만명이고요. 이 중 사우디인은 2185만명입니다. 사우디의 젊은 인구 구조는 국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젊은 층들이 소비할 문화 대상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사우디가 e스포츠와 문화·게임 산업에 관심이 많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는 "사우디는 어느 국가보다 인적 네트워크가 큰 사업 동력이 되고, 중시되는 편"이라며 "정권에 따라 사우디와 협력 관계가 달라지지 않고 꾸준히 정부 지원과 관심이 이어진다면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