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선희의 미래인재 교육] 수능 30년…'선진형 평가' 도입할 때다

입력 2022-11-16 18:02
수정 2022-11-17 00:13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면 전 국민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듣기평가 시간대에 항공기 이착륙이 통제되며, 언론 방송은 연일 톱기사로 수능을 보도한다. 가히 전 국민적인 행사다. 올해도 수능은 50여만 명의 수험생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전국일제고사로 치러진다.

1년에 한 번 전국일제고사로 시행되는 체제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므로 수험생이 느끼는 부담이 크다. 미국 대학입학시험 중 하나인 ACT는 1년에 5번 시험을 치르고, 학생은 최대 12번까지 볼 수 있다. SAT는 1년에 7회 시행하고, 응시 연령과 횟수 제한도 없다. 일회성 시험은 평가 신뢰도 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수능 점수만으로 지원하는 정시전형에서는 모든 지원자가 세 개의 대학·학과를 선택해 동시에 지원하는 과정을 거치며, 온갖 눈치작전과 혼란이 일어난다.

대입학력고사가 암기만 강조하는 교과목 중심 시험이라는 비판에서 1993년 시작된 수능은 교과가 아닌, 3개 영역(언어 수리 외국어) 시험으로 종합적 사고력을 평가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제2외국어, 한문, 사탐, 과탐, 직탐, 한국사 등의 교과목이 땜질식으로 추가되고 2014학년부터는 언어, 수리영역이 아예 국어, 수학으로 바뀌었다. 수능이 교과 중심 학력고사로 회귀하면서 수능 성격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수험생에게는 과중한 부담이 주어지며 사교육 의존도만 높아졌다. 대학도 신입생 학업능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면서 수능의 타당성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평가원은 그동안 난이도 조절 실패 및 출제 오류 등으로 공신력에 타격을 입었다. 교수들이 비밀 합숙을 통해 문제를 출제하고, 측정학적으로 미검증된 검사를 시행하는 현 수능 체제에서 난이도 조절은 불가능하다. 출제 위원도 매년 새로 바뀌기 때문에 문항 제작에 대한 경험 축적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검사 시행 전에 문항 분석을 통해 난이도와 적합도에 대한 측정학적 검증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 합숙형 출제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앞으로의 수능 개편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먼저 수능에 대한 학생 선택권이 확대돼야 한다. 응시 과목 선택은 물론 응시 시기와 횟수 등 다양한 선택이 보장돼야 한다. 새로운 수능은 다양화와 개별성이 존중되는 교육의 방향과 맥을 같이해야 한다. 다양한 선택과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려면, 평가원은 현 합숙형 출제를 문제은행식 상시 출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유럽 등 평가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문제은행식 출제가 자리 잡았다. 미국의 수능 SAT는 내년부터 지필검사를 전면 디지털시험으로 전환하고, 컴퓨터 적응검사(CAT)를 적용한다. CAT는 수험생 능력별로 다른 문항이 제시되는 검사 방식으로, 시험 시간을 단축하면서도 더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미국 ETS에서 주관하는 GRE, GMAT 등에서는 CAT가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첨단기술 발달로 평가는 혁신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보안 문제에 발목 잡혀 합숙형 출제를 계속할 것인가? 이제는 과감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최근 정부는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현장 피로도를 지적하며 미세 조정만을 예고했다. 입시 문제 해결보다 수업 혁신에 중점을 두는 입장이다. 수능이 교육 현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입시 개혁 없는 수업 혁신은 반쪽짜리다. 그동안 대입제도 개편이 문제가 된 이유는 그때그때 미봉책에 그치거나 기본 철학이 부재한 개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사태로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자 정시 확대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평가 철학의 부재 속에 본질이 아닌, 곁가지만 손대다 보니 누더기 입시가 돼버렸다. 논란을 피하지 말고, 본질을 꿰뚫는 입시 개혁을 추진하는 교육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