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낙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강남구 은마,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등 대형 개발 호재를 품은 아파트의 매매가격도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개발 호재가 선반영돼 집값이 단기 급등한 데 따른 피로감이 큰 상황에서 금리 인상 등 외부 악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재건축 첫발 뗀 은마, 8.6억원 급락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은마 전용면적 76㎡는 지난 8일 17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8일 19억9000만원에 팔리며 20억원 선이 무너진 지 한 달 만에 2억2000만원이 더 떨어졌다. 작년 11월 기록한 최고가(26억3500만원)와 비교해선 8억6000만원 넘게 하락한 가격이다.
강남 재건축의 상징으로 꼽히는 은마는 지난달 19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최고 35층, 5778가구 규모의 매머드급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계획안이 통과됐다. 2003년 재건축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꾸려 사업을 추진한 지 19년, 도시계획위에 계획안이 처음 상정된 지 5년 만이다. 대치동 A공인 관계자는 “오래 기다려온 계획안 통과 이후 매수 문의가 늘긴 했지만, 여전히 급매물이 아니면 수요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갈수록 심해지는 집값 하방 압력을 줄이긴 역부족인 것 같다”고 했다.
은마 전용 84㎡는 지난 10일 경매에 나왔지만, 참여자가 없어 유찰됐다. 감정가 27억9000만원인 이 매물은 다음달 22억3200만원에 다시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은마 재건축 계획안 통과로 재건축 추진에 대한 기대가 커진 맞은편 대치우성1차(사업시행인가) 전용 115㎡도 지난달 20일 이전 최고가(29억8000만원)보다 3억원 가까이 내린 27억원에 거래됐다. 송파구에선 지난 2월 재건축 계획안이 확정된 잠실주공5단지 전용 76㎡가 지난달 말 19억850만원에 팔리며 20억원 밑으로 내려앉았다.
지난 9일 4년 만에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이 통과된 양천구 목동신시가지도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날 목동신시가지10단지 전용 105㎡는 17억2000만원에 거래돼 작년 12월 최고가(20억7500만원) 대비 3억5000여만원 떨어졌다. 신정동 B공인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탓에 매수자를 구하기 어려워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리모델링·지하철역 신설도 안 먹혀신규 교통망 확충 호재나 리모델링 추진 기대도 가파른 집값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전용 73㎡는 지난달 이전 최고가(16억6000만원, 2021년 8월) 대비 5억원 가까이 떨어진 11억8500만원에 팔렸다. 지난 7일에는 같은 주택형이 9억원에 직거래되면서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 심리가 더욱 확산하는 분위기다. 9억원은 동일 면적 기준 공시가격인 11억3900만원보다도 2억원가량 낮은 금액이다.
이 아파트는 작년 착공한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구간(길동생태공원역~샘터공원역·2028년 준공)의 정차역인 고덕역(지하철 5호선 환승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다. 고덕동 C공인 관계자는 “5000가구에 가까운 대단지이다 보니 급매물이 비교적 많고 그만큼 체감하는 집값 하락 폭도 크다”고 전했다.
리모델링 공사비만 1조원이 넘는 3000가구 규모의 강동구 선사현대 전용 59㎡는 지난달 말 7억7000만원에 팔리며 10억원 선이 무너졌다. 작년 10월 최고가(12억5000만원)와 비교해선 5억원 가까이 낮아졌다. 업계에선 “한강변에 자리 잡은 데다 지하철 8호선 암사역 역세권 단지인 것을 고려하면 낙폭이 예상보다 큰 편”이라는 평가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