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사건發 급작스런 경영위기…기업의 효과적 대응법은?

입력 2022-11-15 18:01


명품의류 판매기업에서 저성과자라며 사직 권유를 받던 직원이 퇴근 후 자택에서 자살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사건 다음 날 아침 언론에는 단신 보도만 있었는데, 그 다음 날부터 해당 기업의 고질적인 꼰대 문화가 이번 자살 사건 배경이라고 지적하면서, 직원들이 사적 심부름, 폭언, 차별로 고통 받는 관행이 뿌리 깊어 많은 직원들이 집단 퇴사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노동조합과 유족은 자살 사건의 진상조사, 사장의 사과, 관련 임원 중징계를 공개 요구하고, 사내 블라인드에서도 기업의 미흡한 대처와 잘못된 기업문화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종종 위 사례와 유사한 '직장 내 괴롭힘발(發) 위기'를 맞는 기업이 나타난다. 이 때 기업에게는 당면한 사건의 즉각 해결을 넘어, 위기 상황의 특성을 고려한 장기적, 전략적, 근본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 경우 참고할 몇 가지 유의사항을 소개한다.

우선, 기업은 무엇보다 공정한 사실 조사를 신속히 준비, 실행하고 관련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위기관리의 첫 단추라고 해도 좋다.

최대한 신속한 대응은 위기관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위기를 맞은 기업이 대응 속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은 드물다. 급박하게 사안이 진행되어 부득이하게 대응이 늦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눈 앞에 닥친 사건의 조용한 해결만을 염두에 두는 근시안적 접근 때문이다. 정보 부족, 상황 오판, 낙관적 편향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사례에서 유서가 없고 직원이 평소 우울증이 있는 등 사인이 불확실함을 이유로, 또 임원들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은 루머일 뿐 신고가 없음을 이유로 조사 착수를 미룬다고 해보자. 그러던 중 예상 못한 (그러나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암울한 시나리오가 펼쳐지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유족이 사직 문제로 상사와 갈등이 있음을 암시한 고인의 카톡 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하고, 무성의한 기업 대응에 실망한 시민단체가 노동조합과 함께 기업이 판매하는 명품 의류의 불매운동에 나선다면? 기업은 이제 '무성의한 대응'이 아님을 구차하게 변명하고, 공정성에 대한 유족의 의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서둘러 진상 조사에 나서고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기업 위기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사례에서 위 시나리오 실현은 언제든 가능하며, 문제가 불거진 이상 자살 원인이나 직장 내 괴롭힘 주장의 진위가 공식 확인되지 않으면 상황은 종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사는 불가결한 선택지가 된다. 위기관리에는 대범함보다 과민함이 필요한 것이다. 조금 과한 것이 당장 손해일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훨씬 도움이 된다.

기업은 자살에 대한 단신 보도 직후에는 조사 준비에 착수하면서 동시에 그 사실을 사내 외에 알리고, 엄정한 책임 추궁 원칙을 천명함이 적절하다. 그리고 조사 실행에 있어서는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조사 주체를 정하고 또 세심하게 절차를 구성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합의 하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인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그 최종 보고서를 공개하는 방안, 기업이 조사를 주도하면서 직원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조사단에 정기 보고하고 조사 방향에 대한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기업은 임시협의체 구성 등 조직적 대응을 통해 대외적 의사소통상 실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어떤 내용으로 누구를 상대로 언제 어떻게 대외 의사소통을 할지는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급속히 악화된 여론과 기업 평판이 위기를 악화시키는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활동은 전문성은 물론, 최신 정보를 종합하여 법적 문제와 예상되는 부작용까지 고려할 수 있는 종합적 역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외부 대응이 시급하다고 해서 인사·노무 담당부서, 법무부서 등 어느 한 부서가 단독으로 행할 것이 아니다. 서로 지혜를 모으고, 또 커뮤니케이션 담당부서, 나아가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 기업은 여론 대응이 본격 필요한 시점, 사례에서는 늦어도 후속 보도가 나온 직후부터는, 관련부서 책임자 전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임시협의체(TaskForce)를 구성하여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명예훼손, 개인정보 등 법적 이슈까지 검토하여 메시지를 사전에 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부 창구를 단일화해서 정제된 메시지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대상에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위기가 발발한 초기부터 이런 조직적 대응을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위기를 키우는 의사소통상 실수가 나오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Δ최종책임자인 사장이 스스로 나서 일부 문제의 언동까지 전면 부인하는 경우 Δ인터뷰 직원이나 불매운동을 실행하는 시민단체의 입장을 비난하는 인상을 주는 경우 Δ가해자로 지목된 임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경우 Δ악의적 왜곡에 대한 적시 반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등이 그러한 예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은 최종책임자인 CEO가 직원을 상대로 소통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사례처럼 직장 내 괴롭힘이 잘못된 기업문화에 원인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그 잠재적 피해자인 내부구성원(직원)들은 기업이 얼마나 진정성 있고 과감하게 문제를 개선해 나갈 것인지 관망하며 평가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러한 직원들의 평가는 위기관리 성패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기업은 적시에 개선 의지를 알리고,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여 설명회, 워크샵, 교육을 통해 적극 선전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의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최종책임자인 CEO의 메시지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물론 최종책임자가 메시지를 낸다고 당장 위기가 극복되지는 않는다. 단, 직원들에게 기업이 개선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함을 알려, 위기 확대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실제 필자가 자문한 기업들 중에는, 최종책임자가 초기에 사내 메일을 통해 Δ현 상황에 대한 사과 Δ진행 중인 조치 보고 Δ가해자에 대한 엄중조치 약속 Δ피해 보전 Δ당국 조사에 대한 적극 협조 Δ후속 컴플라이언스 조치 실행 의지를 알리고 징계 실행 직후에도 워크샵 등에서 직원들과 소통한 사례가 많았다.

이 때 메시지는 민감한 시기에 나오게 되므로 사실에 입각한 정제된 내용을 담아야 한다. 용어 선택과 표현 수위에서 진정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 결과 아무리 짧더라도 법률·인사·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메시지가 시간을 들여 완성됨이 보통이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