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연료’로 불리는 경유와 휘발유 간 가격 역전 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달부터 L당 200원을 넘겨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수급이 악화된 상황에서 유류세 완화로 인한 경유값 낙폭이 상대적으로 작았고, 겨울철 난방 목적의 경유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659.6원, 경유는 1889.6원으로 경유가 휘발유보다 230.0원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줄곧 휘발유 가격보다 낮던 경유 가격은 지난 6월 L당 2089.0원(월간 기준)으로 연중 최고치를 찍으면서 휘발유 가격(2084.0원)을 14년 만에 앞질렀다. 이후 휘발유 가격은 다소 안정세로 돌아선 반면 경유는 높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면서 격차가 커졌다. 지난달 27일에는 휘발유 가격이 L당 1662.3원, 경유 가격은 1862.4원으로 역전 폭이 200원을 넘겼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진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적으로 경유 수급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유럽은 경유의 6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대유럽 경유 수급이 막히자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줄인 것 역시 유럽이 난방 수요를 경유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동절기를 앞두고 난방 목적의 경유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가격 역전 폭 확대의 요인이 됐다.
유류세 인하 조치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연말까지 37%의 유류세 인하율을 일괄 적용하면서 휘발유 유류세는 기존 L당 820원에서 516원으로 304원 낮아진 반면 경유 유류세는 기존 581원에서 369원으로 212원 인하돼 낙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휘발유가 유류세 인하 조치로 L당 100원가량 더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경유는 제조업, 농업, 물류업 등 산업 전반에 쓰인다는 이유로 그동안 휘발유에 비해 낮은 세금이 부과됐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경유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 3일 단기 에너지 전망에서 올해 경유 소매 가격이 평균 갤런당 5달러 이상(L당 약 1760원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에서는 유류세 등을 감안하면 L당 1800원을 훌쩍 넘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등록 차량 수의 약 40%를 차지하는 경유차 보유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경유차 수요도 줄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 경유차 등록대수는 977만9550대로 지난해 동기 대비 10만8038대(1.09%) 줄었다. 반면 휘발유차는 1201만3475대로 1년 동안 31만238대 늘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에는 경유 가격이 오르면 정부가 일부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경유가 환경 오염의 원흉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정부에서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