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4일 15:2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칼라일그룹이 한국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초 2차전지 업체인 SK온에 대한 조단위 투자를 검토했다가 접은데 이어 3조 규모의 구강스캐너 업체 메디트 역시 인수도 목전에서 고심하고 있다. 연거푸 국내 M&A에 숙고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시장에서 칼라일의 평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칼라일은 PEF 유니슨캐피탈이 보유한 메디트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했다가 소멸했다. 양측은 계약 체결 직전 가격 재협상 과정에서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칼라일은 협상 기한 연장을 요청했으나 유니슨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은 앞서 지난달 19일 실시한 본입찰에서 가장 높은 가격인 약 3조원을 써내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블랙스톤 등을 제치고 우협에 선정됐다.
칼라일의 투자 검토 철회는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다. 칼라일은 올 초 SK온이 추진한 최대 4조 규모 투자 유치에 유력한 앵커 투자자 후보였다. 거래를 주도하는 최재원 SK온 수석 부회장과 칼라일 당시 이규성 총괄대표는 미국 뉴욕에서 여러 차례 만나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급격한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 거시경제 변수가 불거지면서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지난 8월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SK온 투자는 흐지부지됐다. 칼라일이 중도 하차하면서 SK온 투자 유치는 지금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칼라일이 메디트 인수전에서 막판 고심을 거듭하는 건 의미가 또 다르다. SK온은 자체적으로 투자를 중단했으나, 메디트는 사실상 인수자로 정해진 상황에서 계약 체결 직전에 불발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칼라일의 메디트 인수 추진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9년에도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당시엔 유니슨캐피탈에 고배를 마셨다. 이번엔 국내 전략적 투자자로 GS를 끌어들여 우군을 확보하는 등 인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본입찰에서 우협에 선정되며 승기를 잡았다.
칼라일 내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이후부터다. 칼라일은 차순위 참여자인 KKR보다 3000억원 안팎 높은 금액을 베팅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메디트 인수가 자칫 잘못하다간 승자의 저주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은 자금 조달 과정에서도 핵심 기관투자자가 투자 의사를 접는 등 적잖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메디트의 부진한 10월 실적이 협상 결렬의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적은 양측간 계약 체결을 논의하는 중에 공개됐는데, 당초 계획보다는 크게 못미쳤던 것으로 파악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칼라일은 메디트 인수전 내내 적극적이었던 후보 중 하나"라며 "다만 딜 사이즈가 너무 큰 데다, 메디트 실적 예측이 엇갈리면서 3조원을 베팅하는게 맞느냐는 얘기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글로벌 대형 운용사라고 해도 올해 같은 상황에서 3조원 규모 거래를 추진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거래는 칼라일 한국 팀이 총괄했다. 한국 팀은 2019년에 합류한 골드만삭스 출신인 김종윤(존 킴) 칼라일 한국 대표가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2019년 칼라일에 합류한 뒤 카카오모빌리티 투자, 투썸플레이스 인수 등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지난해 1조원 규모의 투썸 인수는 칼라일이 국내 M&A시장에서 7년여 만에 성사시킨 바이아웃 거래로 주목을 받았다. 이번 메디트 인수의 경우 김 대표와 김수민 유니슨캐피탈 대표과의 교감도 어느정도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은 과거 골드만삭스 IB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칼라일의 메디트 인수가 완전히 좌절된 상황은 아니다. 칼라일과 유니슨은 여전히 협상테이블에 앉아있다. 거래 성사의 최대 관건은 결국 가격이다. 양측은 치열한 줄다리기 협상을 진행 중에 있어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칼라일의 메디트 인수가 성사된다면 칼라일의 한국 투자 건 중 역대 최대 규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이규성 대표가 칼라일에서 하차한 가운데 한국팀이 이번 메디트 인수 건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