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 기업들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고유가에 힘입어 네옴시티 등 초대형 프로젝트가 연이어 발주되고 있어서다. 각국과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은 이같은 '사우디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물밑 작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관찰한 외교,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현상을 바탕으로 '김은정의 클릭 사우디'를 연재해 정부와 한국 기업들의 사업 전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꽤 긍정적입니다. 사우디의 주요 발주처는 한국 기업에 대해 “성실하고 속도감 있다”는 평가를 공통적으로 내놓습니다. 수익성이 맞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땄어도 제대로 공사를 마치지 않고 철수하는 다른 국가의 기업들과 달리 한국 기업은 맡은 프로젝트는 완수한다는 믿음이 있다는 게 사우디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사우디 현지에서 대규모 공사를 진행 중인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간혹 공사를 진행하면서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프로젝트를 완공한 실적이 쌓이면서 이제는 사우디 발주처에서 한국 기업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상황이 됐다”고 귀띔했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신뢰 관계를 유지해온 덕분에 한국 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가 높아졌다는 설명입니다.
통상 사우디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이라고 하면 현대건설, 삼성물산, 쌍용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국 기업 중 한 곳은 바로 한미글로벌입니다. 국내에선 대형 건설사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사우디에선 오랜 기간 사업을 활발하게 수행해온 대표적인 한국 기업 중 한 곳입니다.
사우디에서 한미글로벌의 사업 구조는 대형 건설사들과 다릅니다. 직접 건축물을 짓고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아닙니다. 한미글로벌은 1996년 미국 파슨스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선진 건설관리기업인 PM(건설사업관리)을 국내에 도입, 확산한 기업입니다. PM을 주요 사업으로 감리, 개발사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건 한미글로벌의 PM 경쟁력입니다.
한미글로벌은 2008년 사우디에 진출한 이후 현재까지 대형 주거복합단지 조성, 신도시 개발 등 37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런 실적들이 대규모 프로젝트가 연이어 나오고 있는 사우디에서 한미글로벌이 주목받고 있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미글로벌은 2021년 6월 사우디의 미래형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의 특별총괄프로그램관리(e-PMO) 용역을 수주했습니다. 오는 2023년 5월까지 2년 간 이 사업의 프로젝트 관리와 운영 구조 수립, 프로젝트 자원 관리, 개발과 설계관련 내부 관리, 발주처 지시사항 적기 이행 감독, 프로젝트 자료 보관과 관리 방안 수립 등의 업무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의 북서부 홍해 인근 지역에 서울의 약 44배에 달하는 탄소 제로의 친환경 신도시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석유에 의존해온 사우디 경제를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주도하고 있으며 총 사업비가 5000억달러(약 7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프라 사업입니다.
또 한미글로벌은 올 7월 사우디 법인을 통해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주거 복합단지 조성 프로젝트 PM 용역을 수주했습니다. 수주금액은 약 440억원으로 발주처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디리야 게이트 개발청입니다.
디리야 게이트 프로젝트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서쪽으로 20㎞ 떨어진 디리야 지역에 총 사업비 약 200억달러(약 26조원) 들여 최고급 빌라와 타운하우스, 커뮤니티센터, 리조트, 병원, 쇼핑센터 등을 개발하는 사업입니다. 한미글로벌은 이 프로젝트 중 주택과 상업, 오피스 단지 조성 PM 용역을 수주해 오는 2027년까지 업무를 수행하게 됐습니다.
이미 2020년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지어질 약 3만 가구 규모의 주거 복합단지 조성사업 PM 용역도 수주했습니다. 사우디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 로쉰이 발주한 이 프로젝트는 고급 빌라, 아파트, 교육시설, 인프라와 조경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찬건 한미글로벌 부회장은 “2008년 사우디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신뢰를 쌓은 결과물이 더욱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사우디 국부펀드 주도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포함해 크고 작은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미글로벌은 네옴시티를 제외하더라도 PM를 맡고 있는 프로젝트 규모만 18조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발주처 관계자는 "한미글로벌의 경쟁력은 모든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초반 수주에 성공하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초반에 수주한 프로젝트가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면 추가로 이어지는 후속 프로젝트 수주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랜 네트워크에 기반한 초반 수주→추가 수주 성공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리야드·타부크(사우디아라비아)=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