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주요 경제국에서 임금 상승세가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임금 인상이 물가상승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온라인 채용 공고의 임금 추적 자료를 인용해 “10월말 기준 유로존의 평균 임금은 1년 전보다 5.2% 높다”며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된 배경인 ‘임금-물가 스파이럴(나선)’ 모양새가 재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금-물가 나선’은 치솟는 물가에 의한 생활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면서 추가적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유로존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4.2%였지만, 4개월새 1%포인트 더 늘어났다. FT는 “관련 데이터를 처음 추적하기 시작한 2019년의 연간 임금 상승률(1.5%)에 비해선 3배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인디드 등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주요경제국의 임금 상승률이 특히 가파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독일의 평균 임금은 1년 전보다 7.1%나 올랐고, 프랑스도 같은 기간 4.7%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유로존의 임금 상승세는 미국, 영국에 비해 비교적 완만한 편이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급격한 경제활동 재개로 인해 고용시장이 타이트해지면서 인건비가 가파르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일부 회원국들의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의한 에너지 비용 급등에 대한 보상을 반영한 결과 평균 임금 상승률은 올해 4%, 내년 4.8%로 각각 올라갈 것”이라며 평균 임금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ECB의 파비오 파네타 집행이사는 지난주 한 인터뷰에서 “유로존의 임금 상승 압박은 그동안 잘 제어된 편이었지만, 이제는 임금 추세에 대해 극도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CB의 대표적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인사인 파네타 이사마저도 긴축(금리 인상)이 길어질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FT는 “유럽 근로자들이 치솟는 식량·에너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위한 단체행동에 나섬에 따라 가파른 인건비 상승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ECB로선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수 있는 임금 인상 징후를 주시해가며 향후 금리 정책 결정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로존의 10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10.7% 올랐다. 사상 최고치다. ECB는 지난 7월 기준금리를 11년 만에 0.5%포인트 인상한 뒤 지난달까지 두 달 연속 0.75%포인트씩 인상해 기준금리를 연 2.00%까지 올렸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