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09일 16:0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대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칼라일이 3분기 투자자 설명회(컨퍼런스콜)에서 주주들의 질타를 받았다. 3분기 자금모집(펀드레이징)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전세계 기관투자가(LP)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면서 출자자들을 '골라 받는' 운용사였지만, 1년만에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해외에서 펀드레이징을 진행하거나 검토 중인 국내 PEF들도 "칼라일마저 돈을 못모을 정도로 시장이 냉각됐다"며 긴장하고 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칼라일그룹은 지난 8일(현지시간) 컨퍼런스콜에서 펀드레이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3분기에 전체 펀드레이징 총액이 60억달러로 2분기 100억달러 대비 줄었다. 칼라일이 지난해 9월 역대 최대 규모인 270억달러를 목표로 펀드조성에 나선 대표 바이아웃 펀드(칼라일파트너스 8호)도 3분기 19억달러를 모으는 데 그쳤다. 2분기 32억달러 대비 감소한 수치다.
커티스 버서 칼라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주요 출자자들이 겪는 '분모효과(denominator effect)'를 펀드레이징의 어려움을 겪는 대표적 요인으로 언급했다. 주요 공제회, 연기금 등 출자자들은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과 채권 등 전통자산에 투자하고 PEF 출자는 대체투자 중 일부로 분류해 투자한다. 이 중 시가로 평가되는 주식과 채권 시장이 올해 들어 급락하면서 전체자산(분모) 중 전통자산(분자)의 비중은 줄고, 반대로 대체자산의 비중이 저절로 늘어난 현상을 뜻하는 게 분모효과다. 이 때문에 LP들이 3분기에 대체자산 투자를 특별히 늘리지 않았더라도 분모효과로 인해 정해진 상한선이 차버렸고, 이로 인해 신규 출자를 위한 투자여력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펀드레이징 부진은 칼라일그룹의 실적 악화로 직결된다. 칼라일의 3분기 실적발표에 따르면 현재 그룹의 운용 자산은 2분기보다 2% 감소한 3690억 달러를 기록했다.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자본도 약 9% 감소한 740억달러로 집계됐다. 칼라일의 주가도 화요일 장 초반 6% 이상 하락한 26.28달러로 연중 최저치에 근접하기도 했다.
컨퍼런스콜에선 이규성 칼라일 전 CEO의 돌연 사임으로 인한 여파가 펀드레이징 부진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직설적인 질문도 나왔다. 칼라일의 공동창업자이자 임시 CEO인 빌 콘웨이가 나서서 "장기적인 피해는 전혀 없다"며 "나도 35년간 투자해온 투자자이자 칼라일의 투자책임자였다"며 서둘러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PEF업계에선 칼라일의 부진이 현지 출자 시장의 한파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칼라일의 펀드레이징 성과(60억달러)는 3분기 경쟁사인 블랙스톤(450억달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340억달러), KKR(130억달러) 대비 현저히 낮은 수치로 집계됐다. 다만 주요 경쟁사들도 2분기보다 대부분 감소했다.
국내 LP들 입장에선 불과 1년만에 뒤바뀐 시장 환경에 놓이게 됐다. 유동성이 넘쳤던 지난해까지 글로벌 PEF들은 더 많은 돈을 투자하겠다고 줄을 섰다. PEF들이 오히려 투자금을 스스로 줄여서 받는 '컷 백'이 일상적이었다. 글로벌 주요 PEF는 국민연금을 제외한 대부분 국내 기관들엔 수수료 할인 등 우선권을 주는 펀드레이징 첫 라운드에 초청하지도 않았다.
요즘 상황은 심각하다. 국내에선 주요 공제회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금리인상 여파로 회원들의 대출 수요가 쏟아지면서 이미 정해진 정기 출자 외엔 신규 출자가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해외 LP 확보를 추진해온 한국 대표 PEF들도 칼라일 소식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등 국내 주요 PEF들은 잇따라 조(兆) 단위 펀드레이징에 나서면서 해외 LP로부터 출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녹록지않은 시장환경에 직면한 셈이다. 한 PEF 담당자는 "경기 침체로 주가가 급락한 올해나 내년이 PEF 수익성이 좋은 빈티지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다들 실탄을 구하기 어렵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